[이내화 칼럼] 외모가 아니라 네모다.
 우리나라처럼 홈쇼핑이 잘 되는 곳은 없을 게다. 홈 쇼핑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매일 아침 TV 홈쇼핑에서 연신 신상을 내놓고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은 아침부터 쇼핑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이끌리어 한참 홈쇼핑 방송을 보게 되는데 어떤 상품은 금방 “완판” “매진” 등등 소리가 들린다. 아침부터 이렇게 쇼핑하며 사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홈쇼핑에 온 정신을 쏟는 것처럼 보인다. 그 열정이 참 대단하다.


  오래 전 일본 출장을 갔을 때다. 당시 필자를 안내해준 일본인 파트너 이야기다. 10일정도 함께 일을 했는데 명문대 출신에 친절하며 잘 생기고 어려가지로 맘에 들었다. 좀 특이한 건 10일 내내 같은 옷에 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하루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구로자와 상! 참 소박하시네요. 거의 사치를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애가 네 명이라서 외모를 가꾸거나 치장할 시간도 여력도 없습니다.” 라면서 씩 웃었다. 그러면서 “한국에 갔더니 길거리 모든 사람이 멋있고 아름다워서 연예인인줄 알았습니다.”라는 것이다. 그와 같이 다니면서 필자가 배운 건 너무나 검소하고 절약하는 삶의 태도였다.

  누구나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고 더러는 뽐내려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외모에 많은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에 반하듯이 주변을 보면 외모에 검소하게 사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 노(no) 브랜드로 자신을 치장한다. 치장이란 말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민낯을 보여주면서 사는 사람들이겠다.

  우리나라 메이크업 아티스트 중 김청경 씨가 있다. 그녀는 누드 메이크업을 개발해서 연예인들은 물론 많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누드 메이크업이란 쉽게 말해 화장한 듯 안한 듯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한 사람이 가진 얼굴의 생김새와 피부색을 화장으로 바꾸려는 것 보다는 약간 보완해 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각 사람마다 개성이 살아 있어서 그런지 필자가 보기에 아주 격조 높고 우아한 모습을 연출하는 메이크업이라고 본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필자는 <현상>과 <본질>이란 단어를 언급하곤 한다.  흔히들 말하는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  아마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등등 외형적 즉 겉으로 보여주는 것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이 잘 사는 것일까? 한번 곱씹어 보았으면 한다. 연예인 중 배정남이란 이가 있다. 이 친구는 연예인데도 구제품 옷을 사서 손수 디자인하고 수선을 하는 등 정성껏 공을 들여서 자신만의 멋진 옷을 만들어 입는다. 얼마 전 방송에서 이것을 하는 덴 단돈 2만 원 정도면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여행 작가 오재철의 글이다. 잘 산다는 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 “쟤는 잘살잖아.”  어렸을 적 잘살고 못사는 것은 나이키 운동화가 결정했다. 누군가 새 신을 신고 나타나면 “저 친구는 잘사는 친구라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러움을 삭이느라 신고식이라며 신발을 사뿐히 지르밟아 주곤 했다. 먹고살기 어려운 그 시절 잘산다는 것은 곧 경제적 풍요를 의미했다. 부모님 사업이 대박 나고, 집에 돈이 많으면 잘사는 사람이었다.

  올해 5월 부모님을 모시고 캠핑카로 유럽 여행을 했다. 숙박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볼 요량에 주로 강가에 있는 야영장에서 밤을 지냈다. 하루는 우리 가족 옆에 외국인 가족이 자리를 잡았다. 캠핑에 익숙한 유럽 사람들은 어떤 대단한 걸 해먹을까 싶었는데, 집에서 만들어온 도시락만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 상을 차렸다. 그러곤 오순도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식사가 끝나자 아빠는 강가를 따라 산책을 나서고, 아이들은 초록빛 잔디 위를 뛰어다녔다. 엄마는 나무 그늘 밑에 자리 잡고 책을 읽었다. 너무 행복한 그 가족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정말 잘사는구나” 라는 혼잣말이 나왔다. 한국에서 말하던 ‘잘산다’와 의미가 너무 다르게 느껴져 순간 놀랐다.

  참 우습게도 자연스레 외국인 가족의 자동차로 눈이 갔다. 낡고 오래됐다. 옷도 허름하고, 분명히 유명 브랜드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봤다면 저들이 잘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잘사는 사람들이다. 삶을 살아가는 모습,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잘사는 기준으로 산다면 말이다.>

  오 작가는 다음과 같이 글을 맺는다.

  < 우리에겐 여전히 ‘잘산다’는 것에 물질적 풍요가 기준이다. 이제 이 낡은 시선을 거둬야 할 때가 아닐까. 상대방이 잘사는지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이나 주식 얘기를 꺼내기보단 “요즘 얼마나 웃니?” “가족과 시간을 얼마나 보내니?” 하고 묻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에서라면 훗날 삶을 마무리할 때 “인생 참 잘살았다”는 말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많은 것을 생각해주는 글이다.  필자는 지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외모가 아니라 네모다.” 이를테면 잘 산다는 건 외모로 즉 겉으로 보여주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네모 즉 <네(너)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겉치레>가 아니라 <속치레> 라는 말이다.  잘 사는 이들은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다. 꾸밈이 없고 원래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다. 이런 모습에 진실과 진정이 묻어 나온다는 말이다. 즉 삶의 결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쇼핑과 화장 등을 하지 말라는 건 결코 아니다. <잘 사는 것>과 <잘사는 건> 다른 것 같다.  <잘 사는 건> 본질에 가깝고  <잘사는 건> 현상에 가까운 것 같다. 당신은 ‘잘 살고’ 싶은가? 아니면 ‘잘살고’ 싶은가?

  혹시 잘 살고 싶으면 <외모>보다 <네모>를 생각해 보자. 네 모습을 만들어가는 인생을 살아가라는 말이다. 인생의 길은 <가진 사람>이 되는 것과 <값진 사람>이 되는 것이 있다. 무엇을 하든지 <값진> 모습을 만들어가는 게 <네모>를 만드는 일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쳐 피폐해져 있지만 오늘은  <외모>보다는 <네모>를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이내화20200923 (cre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