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즈라’. 선지자 무함마드가 서기 622년 메카를 떠나 메니다로 이주한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메카는 이슬람을 탄압했다. 초기 이슬람 세력은 새로운 근거지가 필요했다. 이런 의미에서 메니다로의 이전은 이슬람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다. 히즈라가 이슬람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 사건으로 불리는 이유다. 얼마나 중요하던지 이슬람 달력은 히즈라가 일어난 해를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 단어가 요즘 인도네시아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무림이면서도 종교적인 계율과 원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며 살지 않던 사람이 보다 종교적인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히즈라한다’(berhijrah)는 용어로 표현한다. 개인의 종교적 삶에 있어 중요한 결심과 전환을 히즈라라는 역사적 사건을 빌려 표현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약 85% 이상이 무슬림이며, 단일 국가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사는 나라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상대적으로 다원적이고 유연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보다 정통적인 교리와 계율 준수를 강조하는 엄격한 형태로 바뀌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히즈라’ 현상이 과거와 다른 점은 대중매체와 SNS, 또래문화의 영향을 통해 특히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짧은 시간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가히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만 하다. 지난 6월 인도네시아 유력 시사주간지인 ‘템포(Tempo)’지는 이 히즈라 현상, 그 중에서도 특히 연예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특집기사로 실었다. 이전까지 락밴드에 소속돼 음악 활동을 하던 가수가 어떤 계기로 명성과 부가 보장된 화려한 연예활동을 접고, 엄격한 종교적 계율을 지키는 삶으로 ‘히즈라했다’는 이야기 등이 소개됐다. 연예정보 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서도 유명한 연예인이 그 동안의 방탕한 삶이나 개인적인 아픔들을 어떻게 종교를 통해 극복했는 지를 고백하고 앞으로 종교적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겠노라 다짐하는 내용을 흔히 볼 수 있다. 연예인들의 변화가 일반 대중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옷차림에서도 히즈라 현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히잡을 쓰지 않던 여성이 어느날 히잡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히즈라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거리와 공적 장소에서 히잡을 쓰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리에 히잡을 쓴 여성들이 훨씬 많아진 것에 놀란다. 2015년만해도 우리 사무실에서 히잡을 쓴 여직원은 단 한 명이었다. 2018년 8월에는 5명이 히잡을 썼다. 그 중 세 명은 그 3년 사이에 새롭게 머릿수건을 쓰기 시작했다. 바로 그 전주까지도 단발머리에 반소매 옷을 입고 출근하던 직원이 주말을 지내고 월요일에 출근해 보니 머리카락을 다 가리고 긴 치마를 입고 출근하는 식이다.


지금 히즈라 현상의 특징은 이러한 종교적인 삶으로의 전환이 무겁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즈라 현상을 풀어내는 방식은 오히려 가볍고 밝고 경쾌하다. 머릿수건만 해도 서구에서는 여성에 대한 억압의 상징으로 보는 분위기도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선 그렇지 않다. 오히려 머릿수건이 원칙과 뚜렷한 주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머릿수건이 새로운 쿨함(new cool) 또는 새로운 힙함(new hip)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반영하듯 거리에는 한껏 멋을 낸 형형색색의 화려한 히잡들을 볼 수 있다. 히잡을 쓰는 ‘히자버(hijaber)’들을 위한 잡지가 수십종 창간되고, 유투브에는 히잡을 멋있게 쓰는 방법에 대한 영상들이 줄지어 올라온다.

이런 분위기에서 SNS에는 이러한 히즈라 현상을 소재로 한 재미있고 귀엽고 경쾌한 ‘밈’들이 돌아다닌다. 대부분 히즈라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히즈라와 관련해 자신의 심경이나 결심 등을 SNS 공간에 풀어내는 젊은이들도 많다. 유투브 영상에는 히잡을 쓴 록밴드 보컬, 패션 디자이너, 태권도 선수가 나와 어떻게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과 예술적, 직업적 정체성이 충돌하지 않고 통합될 수 있는지를 고백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러한 미디어에 영향을 받는다.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이 히즈라 운동은 흥미있는 현상이다. 종교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2억7000만명이 넘는 대국이며, 자원 부국이다. 앞으로의 성장 잠재력도 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매우 중요한 교역 상대국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사는 나라라고는 해도 지금까지는 이슬람의 가치가 삶의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종교적 가르침과 계율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보다 많아지면서 이슬람의 가치가 종교적 영역에서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까지 더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최근에 있었던 총선과 대선에서는 누가 무슬림들의 표를 가져오는가 하는 것이 큰 이슈였다. 급기야 민족주의 진영의 현 대통령 조코 위도도 후보가 이슬람지도자인 마루프 아민을 러닝메이트로 지목해 이슬람 친화적 정권임을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진영이 더 무슬림을 대변하는가가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부각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히즈라’ 현상은 인도네시아의 정치지형도 바꾸고 있다. 경제활동에서도 점점 더 많은 무슬림들이 이슬람적 가치를 반영하여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식품에서 할랄인증은 물론이고, 할랄관광, 이슬람금융, 할랄인증 병원, 이슬람학교 등에 대한 기사들이 언론의 경제면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슬람 경제, 이슬람 마케팅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배경이다.

요컨대 인도네시아의 히즈라 현상은 개인의 종교적인 선택에 그치지 않고 정치와 경제,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그 파급력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인도네시아가 달라지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히즈라’ 하고 있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