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이 꽉잡은 시장에 도전장 내민 'K샤프트'
스릭슨은 드라이버를 구입하는 고객에게 샤프트를 고를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준다. 메뉴에는 ‘투어AD’와 ‘벤투스’ 등 프리미엄 샤프트가 올라 있다. 타이틀리스트도 드라이버를 사는 고객에게 텐세이 샤프트 등을 옵션으로 내걸고 있다. 다른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드라이버의 명가’ ‘아이언 맛집’으로 불리는 유명 골프용품 업체들도 샤프트만큼은 전문업체 제품을 쓴다. 직접 제조해봤자 투어AD, 후지쿠라 등 전문업체들의 노하우를 뛰어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미국과 일본업체들이 장악한 연 4500억원 규모의 샤프트 시장에 토종업체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저가로 물량공세를 펼치는 것도 아니고, 자그마한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도 아니다. 한 자루에 수십만원에 달하는 프리미엄 시장을 놓고 글로벌 브랜드들과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있다.

美·日이 꽉잡은 시장에 도전장 내민 'K샤프트'
지난해 문을 연 프리플렉스가 그렇다. 유튜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더니 최근 미국 대표 골프용품 사이트 ‘골프WRX’에도 소개됐다. 구조공학을 전공한 최승진 대표(사진)가 3년 연구 끝에 제품을 내놨다. 최 대표는 “이베이에 올렸더니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10여 개국에서 제품을 사갔다”며 “최근 대만업체와 독점 판매계약을 맺는 등 예상을 뛰어넘는 수요에 생산량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K샤프트’의 원조인 두미나의 ‘오토플렉스’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두미나는 2020년 출시한 오토플렉스를 애덤 스콧, 어니 엘스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사용하면서 급성장한 기업이다. 그 덕분에 지난달 열린 글로벌 골프용품 전시회 ‘PGA쇼’에서만 작년 연간 매출(약 100억원)보다 많은 금액을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미나는 급증하는 수요에 발맞춰 최근 제2공장을 준공했다.

프리플렉스와 오토플렉스 제품 가격은 각각 650달러와 790달러(최고가 제품 기준)에 달한다. 유명 샤프트 브랜드의 프리미엄 라인이 300~500달러 정도인 걸 감안하면 ‘럭셔리 샤프트’인 셈이다. 비싼데도 잘 팔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가벼운데도 빠른 스윙 스피드를 견뎌서다. 프리플렉스 제품 라인업은 38g, 45g 모델 2개가 전부다. 오토플렉스도 41~57g밖에 안 나간다.

업계에선 40g대 샤프트는 스윙 스피드가 시속 80마일을 밑도는 여성 골퍼들에게 적합하다고 본다. 50~60g대는 스윙 스피드가 시속 90마일 남짓한 일반 남성 골퍼가, 그 이상의 속도는 70g 이상의 샤프트를 쓰는 게 공식이다. 가벼운 샤프트를 쓰면 헤드 스피드가 빨라져 비거리가 늘지만, 강도가 떨어져 방향이 흐트러지는 문제가 생긴다.

프리플렉스는 구조공학으로 이런 난제를 풀었다. 최 대표는 “카본 등 샤프트에 들어가는 재료의 함량과 배열의 비균등성으로 무게를 줄이면서도 샤프트의 강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했다. 두미나는 소재 배합 비율과 샤프트를 만드는 특수 공정을 통해 가벼우면서도 딱딱한 샤프트를 생산하는 원천 기술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 이은 ‘골프 3대 강국’으로 자부하지만 연간 4500억원에 달하는 샤프트 시장에선 그동안 아무런 힘도 못 썼다”며 “마케팅과 영업망이 확충되면 토종업체들이 미국과 일본이 주름잡고 있는 글로벌 샤프트 시장 판도를 뒤흔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조사업체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샤프트 시장 규모는 3억5600만달러(약 4524억원)로, 1년 전(3억4563만달러)보다 3% 성장했다. 이 업체는 글로벌 샤프트 시장이 2028년까지 4억2540만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