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CNBC 골프채널 홈페이지의 대문은 막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발스파 챔피언십 우승자 기사가 아니었다. 헤드라인을 차지한 건 만 50세 이상 선수들이 출전하는 PGA 챔피언스투어였다. 챔피언스투어 최다승 기록(46승)에 도전하는 ‘시니어 골프계의 타이거 우즈’ 베른하르트 랑거(66·독일)와 20년 전 우즈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어니 엘스(54·남아프리카공화국) 간 맞대결에 쏠린 골프팬들의 관심이 더 크다는 판단에서였다.

‘꽃보다 할배’ 골퍼들이 펼치는 시니어 투어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왕년의 스타들이 모여 끝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박빙의 승부를 펼쳐서다. 수년 뒤 우즈가 합류하면 PGA에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의 뉴포트비치CC(파71)에서 열린 호그 챔피언십(총상금 200만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이는 ‘PGA 19승’에 빛나는 엘스(최종 합계 13언더파 200타)였다. 2라운드에 이어 3라운드에서도 65타를 적어내면서 최종 라운드에서 2타를 잃은 랑거를 제쳤다. 2020년 챔피언스 투어에 데뷔한 그는 통산 3승을 거뒀다.

엘스의 우승으로 챔피언스투어는 사실상 ‘빅4’ 체제가 구축되면서 한층 더 달아오르는 모양새가 됐다. 상금 선두에는 우즈의 퍼팅 스승으로 유명한 스티브 스트리커(70만4500달러·56·미국)가 올랐고, 그 뒤를 데이비드 톰스(46만2160달러·56·미국), 엘스(43만9780달러), 랑거(41만4723달러)가 잇고 있다. 이들이 현역 때 거둔 PGA투어 우승 수만 47승에 달하고 그중 메이저 트로피만 7개다.

코스 설계와 재단 운영, 와이너리 사업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엘스는 “앞으로 챔피언스투어에 더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퍼팅 그립을 바꾸는 등 의욕을 보인 그는 “아직 더 고쳐야 할 것들이 있다”고 했다. 챔피언스 무대를 통해 골퍼로 새로 태어난 랑거는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현역 시절엔 3승이 전부였지만, 챔피언스에선 45승을 쓸어담았다. 덕분에 상금도 PGA투어(1075만달러) 때보다 3배 이상 많은 3413만달러를 챔피언스 투어에서 거뒀다. 헤일 어윈(78·미국)과 함께 챔피언스 역대 최다승 공동 1위에 올라 있는 랑거는 1승만 더 거두면 단독 1위가 된다.

최근 외신에선 우즈가 언젠가 챔피언스에서 뛰겠다는 의사를 잭 니클라우스(83·미국)에게 전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챔피언스는 PGA투어와 달리 카트를 타도 되는 만큼 다리가 불편한 우즈에겐 안성맞춤인 대회다.
베른하르트 랑거
베른하르트 랑거
여러 호재에 힘입어 챔피언스 투어의 인기는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 올해 총상금은 6600만달러(약 865억원·23개 대회)로 작년보다 400만달러 늘었다. 한국 대표 남자선수들이 겨루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의 올해 총상금(250억원)보다 3.5배 많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시니어 투어는 스폰서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찬밥 신세’지만, 미국에선 PGA투어에 이은 인기 대회로 자리잡았다”며 “왕년의 스타들이 모인 데다 선수들과 함께 늙어가는 ‘골수팬’들은 이들을 보며 추억을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GA투어와 챔피언스를 병행하는 ‘탱크’ 최경주(53)는 최종 합계 10언더파 203타 공동 7위에 올랐다. 올 시즌 첫 ‘톱10’ 성적이다. 앞서 치른 3개 대회에선 미쓰비시 일렉트릭 챔피언십 공동 18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양용은(51)은 6언더파 207타 공동 31위를 기록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