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카타르 알바트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 독일과 스페인의 경기에서 안토니오 뤼디거(왼쪽)와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카타르 알바트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 독일과 스페인의 경기에서 안토니오 뤼디거(왼쪽)와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 조별리그 반환점을 돈 카타르월드컵을 ‘이변과 반전의 경연장’으로 불러야 할 정도다. ‘만년 약체’로 평가받아온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실력이 유럽과 남미의 턱밑까지 올라오면서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경기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유럽 출신 감독을 영입하며 선진 축구 기법을 들여온 데다 유럽 무대에서 뛰는 선수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하고 있다.

28일 국제축구연맹(FIFA)에 따르면 지난 27일까지 카타르월드컵에서 치러진 11차례의 유럽과 아시아·아프리카 간 대결에서 유럽은 6승2무3패를 거뒀다. 4년 전 러시아월드컵의 조별예선 전적(10승3무3패)과 비교하면 아시아·아프리카 국가가 크게 선전한 셈이다.

득점을 보면 차이는 더 많이 난다. 이번 대회에서 유럽이 아시아·아프리카를 상대로 낸 득점은 19골, 실점은 11골이다. 득점 19골 중 10골이 두 경기(잉글랜드-이란전 6-2, 프랑스-호주전 4-1)에서 나온 걸 감안하면 나머지 경기의 득점은 비슷했던 셈이다. 독일이 일본에 1-2로 패하고, 벨기에가 모로코에 0-2로 무너지는 등 이변도 있었다. 4년 전에는 유럽이 30골을 넣는 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16골만 내줬다.

전 세계 축구실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16강에 오르는 아시아·아프리카 국가 수는 역대 어느 대회보다 많을 가능성이 있다. 이란은 웨일스를 2-0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1승1패(승점 3)로 B조 2위로 올라섰다. B조는 잉글랜드(승점 4)가 미국(승점 2)과 비기면서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란은 숙적 미국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남겨놓고 있다. 아르헨티나를 꺾은 이변의 주인공 사우디아라비아는 폴란드에 0-2로 패했지만, 16강 진출 가능성이 꺾인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축구 실력이 급상승한 이유로 유럽 빅 리그에서 뛰는 스타선수가 늘어난 점을 꼽는다. 한국 대표팀만 해도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울버햄프턴), 김민재(나폴리) 등 8명이 유럽파다. 일본은 이번 월드컵 최종 엔트리 26명 가운데 19명이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축구 선진국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도 이변에 한몫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진행하는 네이션스리그는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이 유럽 축구에 관한 정보를 얻는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유럽국가는 2년마다 열리는 네이션스리그에서 자존심을 걸고 싸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 대회만 살펴봐도 유럽의 전력과 전술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선 기존 ‘월드컵 공식’도 판판이 깨지고 있다. 가장 먼저 깨진 건 ‘개최국 프리미엄’이다. 개최국이 개막전에서 진 건 카타르가 처음이다. 92년 월드컵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카타르는 지난 25일 세네갈과의 2차전에서 1-3으로 패하며 일찌감치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0년 개최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1승1무1패로 마지막까지 16강 진출 불씨를 태웠다.

직전 대회 우승국은 16강 진출에 실패하거나 이변의 희생양이 된다는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도 깨지는 모양새다. 프랑스는 27일 덴마크와의 D조 2차전 경기에서 2-1로 승리하며 32개 본선 진출국 가운데 가장 먼저 16강행 티켓을 따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