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은퇴 대회를 마지막으로 17년 동안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활동을 마무리하는 홍란. 그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롱런의 비결이었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내년 4월 은퇴 대회를 마지막으로 17년 동안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활동을 마무리하는 홍란. 그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롱런의 비결이었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홍란(35)이 17년 동안 지켜온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떠난다. 최다인 356개 대회 출전, 287경기 커트 통과, 1043라운드 플레이 등 대기록이 그의 빈자리를 채운다. 지난 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시원하고 홀가분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2005년 KLPGA투어에 데뷔한 홍란은 2008년 레이크사이드 여자오픈을 시작으로 통산 4승을 쌓았다. 17년간 시드를 유지해왔지만 올 시즌 상금 순위가 78위에 그치자 은퇴를 결심했다.

홍란은 스스로를 “화려하지 않은 선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초’라는 수식어는 한국 여자골프에서 그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KLPGA투어 최초로 300개 대회 참가, 1000라운드 돌파 기록을 세웠다. 정규투어에서 10년 이상 연속으로 활동한 선수들의 모임인 ‘K-10 클럽’의 첫 번째 회원도 바로 그다.

그는 꾸준한 경기력의 공을 후원사로 돌렸다. 홍란은 소속사인 삼천리와 8년, 클럽 후원사 야마하와 10년, 의류 후원사 엠유와 12년 동안 인연을 이어왔다.

“이만득 삼천리 회장님은 처음 후원계약을 맺을 때 세 가지를 약속하자고 하셨어요. ‘만 35살까지는 활동할 것, 다른 활동에 눈돌리지 말고 운동에만 집중해줄 것, 은퇴 후에는 후배 양성에 도움이 돼줄 것’ 등이죠. 돌이켜 보면 제 선수생활의 큰 틀을 잡아준 말씀이었죠.”

이갑종 오리엔트골프 회장도 잊을 수 없는 은인으로 꼽았다. 그는 “선수들 의견이 클럽 개발에 반영되도록 귀담아 들어주고 일본에서 피팅까지 주선해줄 정도로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챙겨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긴 세월 함께해온 골프는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골프는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나선 대회에선 90%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준비가 좀 부족하고 불안한 대회에서는 의외로 좋은 성적이 나오곤 해요. 작은 욕심 때문에 미스샷이 나고,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은 순간 행운이 오죠. 정말 인생과 비슷하지 않나요?”

프로 4년차인 2008년 두 번째 우승을 거둔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 “1~3년차 때 아버지가 캐디를 해주셨는데 첫승 때 공교롭게도 다른 분이 캐디를 해주셨어요. 2주 뒤에 아버지가 백을 들어주신 대회에서 우승했어요. 마지막날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아직도 생생해요.”

투어 생활 마지막인 올해를 마무리하며 홍란은 또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지난달 30일 열린 KLPGA 대상 시상식에서 올해 신설된 ‘아름다운 기부상’의 첫 수상자가 된 것. 지난 6월 ‘1000라운드 출전’을 기념해 1000만원을 KLPGA에 기부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제 투어에 입문하는 루키들에게 그는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분명 많은 실수가 나올 것이고 좌절하는 날이 있을 것”이라며 “그런 날은 기억에서 지우고 한 주, 한 달, 1년으로 길게 보고 달려가라. 그것이 홍란의 롱런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4월 은퇴 경기를 앞둔 그는 이제 인생 2막을 준비 중이다. 오랜 투어 경험을 바탕으로 소속사인 삼천리가 여자골프 꿈나무 육성을 위해 운영하는 ‘삼천리 골프 아카데미’에서 멘토로 활동할 예정이다. “올 시즌 마지막으로 참가한 에쓰오일 챔피언십에서 후배 안송이(31)가 은퇴를 축하하면서 그러더군요. ‘제가 언니 기록을 꼭 뛰어넘겠다’고요. 앞으로 더 많은 후배들이 저보다 더 오래 활동해서 한국 여자골프를 빛내줬으면 좋겠어요.”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