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 "김도균 코치와의 만남이 내 인생 바꿔…평생 은인"
김도균 코치는 여자 100m허들 아시안게임 金 정혜림의 남편
장대높이뛰기 한국기록 제조기 진민섭은 든든한 지원군이자 형
[올림픽] '육상 새 역사' 우상혁과 함께 뛴 김도균 코치·장대 진민섭
특별취재단 = 자신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한 명 혹은 두 명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에겐 김도균(42) 국가대표 코치와 '장대높이뛰기 한국기록 제조기' 진민섭(29·충주시청)과 만나, 인생을 바꿨다.

그리고 우상혁은 한국 육상의 역사를 바꿨다.

이제 우상혁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육상선수다.

우상혁은 1일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신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를 넘어 4위를 차지했다.

우상혁이 도쿄 하늘을 날아오를 때마다, 한국 육상의 역사가 바뀌었다.

그는 7월 30일 예선에서 2m28을 뛰어, 9위로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 육상 트랙&필드 선수가 올림픽 결선에 진출한 건, 1996년 높이뛰기 이진택 이후 무려 25년 만이었다.

우상혁은 더 나아가, '20세기'에 작성된 한국 기록과 한국 육상 트랙&필드를 막고 있던 '8위의 벽'을 깼다.

우상혁은 2m35를 1차 시기에 넘었다.

1997년 6월 20일 전국종별선수권대회에서 이진택이 세운 2m 34를 1㎝ 넘은 한국 신기록이다.

24년 동안 멈춰 있던 한국 기록을 우상혁이 바꿔놨다.

한국 트랙&필드 사상 올림픽 최고 순위였던 '8위'도 25년 만에 '4위'로 4계단이나 뛰어넘었다.

한국 육상은 1996년 이후 점점 세계의 벽과 멀어졌지만, 우상혁은 힘찬 도약으로 굳게 닫혔던 세계 정상권으로 향하는 길의 문을 활짝 열었다.

[올림픽] '육상 새 역사' 우상혁과 함께 뛴 김도균 코치·장대 진민섭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우상혁에게 '도약의 조건'을 묻자, 그는 "김도균 코치님과 계속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상혁은 "김도균 코치님이 내 인생을 바꿨다"며 "정말 힘들 때 코치님을 만났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할 때 코치님은 '상혁아, 넌 더 할 수 있어'라고 말씀해주셨다.

코치님과 함께 한 시간 동안 '훈련의 성과'와 '나 자신'을 믿게 됐다"고 했다.

김도균 코치는 육상계에서는 '세계 중심부로 향하는 한국 도약 종목 듀오' 우상혁, 진민섭의 코치로 잘 알려져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건 '아시아 허들 여제' 정혜림(34·광주광역시청)의 남편이기도 하다.

김도균 코치는 우상혁, 진민섭을 향한 애정과 칭찬은 아끼지 않으면서도 '코치 인터뷰'는 한사코 마다했다.

[올림픽] '육상 새 역사' 우상혁과 함께 뛴 김도균 코치·장대 진민섭
정혜림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남편) 김도균 코치는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만 재능을 보여준다"고 웃으며 "자신을 드러내는 걸 싫어한다.

자유로운 영혼이다.

선수 얘기가 아닌, 개인 사연은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함께 훈련한 우상혁, 진민섭 등 'D.K 패밀리'는 김도균 코치에 관한 미담을 쏟아낸다.

김도균 코치는 '설득'에 능하다.

김도균 코치는 '당장은 기록이 나오지 않아도, 탄탄한 실력을 쌓는' 중장기 계획을 세워 우상혁과 진민섭에게 제시했다.

우상혁은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이 방향이 맞나'라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놓으며 "그런데 역시 김도균 코치님 생각이 옳았다"고 했다.

2017년 2m30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운 뒤, 정체했던 우상혁의 기록은 올해 6월 29일 2m31로 1㎝ 올랐고, 도쿄올림픽에서는 2m35까지 상승했다.

김 코치는 직접 요리를 하고, 선수들과 산책하며 '선수와 코치 사이의 장벽'을 없앴다.

우상혁과 진민섭은 김 코치를 '아버지이자, 형이자, 친구'라고 했다.

김도균 코치에게 설득당한 우상혁은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기 전인, 올해 3월이 '입대'하기도 했다.

김 코치는 '군인 신분'의 절제된 생활이 우상혁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고, 우상혁은 김 코치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이 정도로 김 코치와 선수들 사이에는 신뢰가 깊어졌다.

[올림픽] '육상 새 역사' 우상혁과 함께 뛴 김도균 코치·장대 진민섭
진민섭은 "사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선수보다 고생 많이 한 분이 김도균 코치님이다"라며 "코치님의 노력이 외부에도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진민섭에게도 김 코치는 '평생의 은인'이다.

극적인 스토리도 있다.

진민섭은 2020년 초 호주 전지 훈련을 위해 출국할 때 시드니 공항 수하물 처리 규정문제로 5m20 짜리 장대를 비행기에 실을 수 없었고, 장대 없이 호주에 도착했다.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김도균 코치는 진민섭에게 맞는 장대를 수소문했다.

김 코치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스티브 후커(호주)에게 5m20짜리 장대가 있었다.

후커가 머무는 곳은 시드니 공항에서 1천500㎞ 이상 떨어진 노스애들레이드였다.

김 코치는 왕복 50여 시간을 운전해 장대를 받아왔다.

후커의 장대는 1988년에 만든 오래된 장비였다.

그러나 진민섭의 손에서 후커의 장대는 '올림픽 티켓'으로 변했다.

진민섭은 2020년 3월 1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에서 열린 뱅크타운 장대높이뛰기대회에서 5m80을 날아올라, 자신이 지난해 8월 6일에 세운 한국기록(5m75)을 5㎝ 넘어선 한국 신기록을 달성했고, 동시에 도쿄올림픽 진출을 확정했다.

정혜림은 "남편은 나와 보내는 시간보다 선수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사적인 시간까지 함께 하는 모습에 '아니,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묻기도 했다"고 깔깔 웃으며 "남편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함께 연구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선수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고 전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농담 섞인 타박을 하는 정혜림도, 우상혁과 진민섭에게 '엄마이자, 선배이자, 누나'가 됐다.

정혜림은 "우상혁이 거둔 성과가 감격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우상혁과 진민섭이 훈련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봤다"며 "그렇게 열심히 훈련하고 고민하면, 잘될 수밖에 없다.

우리 상혁이는 아직 어리니까, 더 성장할 것이다.

부상으로 이번 대회는 아쉽게 마친 진민섭도 이미 엄청난 일을 해낸 선수다.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는 진민섭도 더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후배이자, 남편의 제자들을 응원했다.

[올림픽] '육상 새 역사' 우상혁과 함께 뛴 김도균 코치·장대 진민섭
우상혁의 옆을 지킨 또 한 명의 '지인'은 진민섭이다.

이미 국내 높이뛰기 일인자가 된 우상혁은 8번이나 한국기록을 세우면서도 안주하지 않는 '선배' 진민섭을 보며 좋은 자극을 받았다.

진민섭은 7월 31일 도쿄올림픽 장대높이뛰기 예선에서 갑작스러운 허벅지 통증 탓에 5m65의 벽에 막혀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자신의 경기가 끝난 뒤 진민섭은 "우상혁을 목이 터지라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진민섭은 1일 귀국한 뒤에도 우상혁을 열심히 응원했고, 우상혁이 한국 기록을 세우자 제 일처럼 기뻐했다.

1일 오후 늦게 진민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우상혁이 도약을 축하하는 메시지로 가득했다.

한국 육상은 올림픽에서 오랫동안 '20세기의 벽'에 막혀 있었다.

도약 종목을 향한 관심은 100m 등 트랙보다 적었다.

그러나 김도균 코치는 우상혁, 진민섭을 통해 희망을 봤다.

김도균 코치, 정혜림, 우상혁, 진민섭 등 소수의 'D.K. 패밀리'만 알던 중장기 계획이 도쿄올림픽을 통해 한국의 많은 팬에게 전해졌다.

그렇게, 한국 육상 트랙&필드는 '20세기'와 작별하고 '21세기'를 맞이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