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그랜드슬램 시상대에 오를 것이란 기대감과 욕심이 있다."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쓴 정현(29위·한국체대)이 2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의류 후원사 라코스테 주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정현은 올해 첫 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에 출전해 알렉산더 즈베레프(세계랭킹 4위·독일), 노바크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연파하며 4강까지 진출했다.

이는 1981년 US오픈 여자단식 이덕희, 2000년과 2007년 US오픈 남자단식 이형택이 기록한 한국 선수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 16강을 뛰어 넘은 성적이다.

4강전에서 발바닥 부상으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에게 기권패했지만 스포츠 팬들은 그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정현은 호주오픈을 돌아보며 "모든 경기가 중요했지만 조코비치와 다시 같은 코트에서 맞대결해 승리를 끌어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준결승 때는 아픈 것을 잊고 경기하려고 했지만 진통제 효과를 더는 볼 수 없어서 힘든 결정을 했다"면서 "잘 치료해서 저의 한계를 늘리고, 부상 없이 앞으로의 경기를 치르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현의 인기는 그야말로 뜨겁다. 실력은 물론이고, "우승 세리머니를 생각하느라 위기에 몰렸었다" 등의 재치있는 장내 인터뷰가 '정현 팬덤'을 일으켰다.

특히 그가 4강전을 기권한 뒤 물집으로 깊게 팬 오른발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뒤 팔로워 10만 명을 순식간에 돌파했다.

그는 "아직 한국에서 길거리를 돌아다니지는 못해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대회를 마치고 공항에 상상 이상으로 많은 분이 오셔서 '내가 정말 잘하고 왔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팀 내에서도 (팔로워가) 몇 배로 뛴 것에 놀라고 있다.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며 같이 기뻐해 주신다"면서 "100만 명까지 가보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재치있는 인터뷰 비결에 대해선 "유사한 질문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 같다"면서 "어릴 때부터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땐 말을 잘하는 편이었고, 대표팀에서 생활할 때도 분위기를 이끌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정현은 귀국 후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다행히 회복 속도가 빠르다.

그는 "호주오픈을 마치고 매일 병원에서 체크했는데, 몸에 큰 이상이 없고 발바닥도 좋아져 다음주부터는 정상적으로 훈련할 수 있다고 한다"며 "어리다 보니 회복 속도가 빠르다. 새살이 돋기만 하면 돼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호주오픈 이후 랭킹포인트 720점을 추가해 총 1472점으로 남자프로테니스(ATP) 단식 세계랭킹 29위에 오른 정현은 다음 메이저대회인 5월 프랑스오픈에서도 선전을 다짐했다.

그는 "호주오픈에서 갑작스럽게 4강에 올라 이제 어느 정도 목표를 잡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목표를 재설정해야 할 것 같다"면서도 "지난해 클레이코트 시즌에 좋은 성적을 낸 기억이 있는 만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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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현 선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자신의 장기 백핸드 노하우는.

"자기만의 리듬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온몸의 힘을 뺀 상태에서 유지하는 게 중요한 팁이다. 리듬이 경쾌하게 맞아 떨어져야 랠리를 진행할 수 있다"

김일순 감독과는 귀국 후 만났는지.

"어제 함께 저녁 먹고 못했던 얘기 나눴다. 팀끼리는 따로 사진을 찍을 필요도 없는데 '언제 볼지 모르는데 찍어보자'하고 사진 촬영도 했다"

조코비치와의 대결 영상이 호주오픈 유튜브 조회 수 3위다. 그 영상을 본 적이 있는지.

"내 영상을 못 본다. 내 스윙을 보면 마음에 안들고 오그라든다. 다른 선수들 영상은 찾아보지만 내 영상은 안 본다"

호주오픈 4강 승부처는.

"모든 경기가 중요했지만 조코비치 경기가 중요했다. 똑같은 코트에서 2년 만에 만나 승리로 장식한 게 기억에 가장 크게 남는다"

발바닥 부상 투혼도 화제가 됐다.

"매일 2~3시간씩 경기를 하다보니 물집을 가지게 된다. 그랜드 슬램은 5세트 경기이고 그렇게 높게 올라가본적도 없었기에 한계를 느낀 것 같다. 작년에 다친 부분을 잘 관리해서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싶은 게 첫 번째 구상이다"

기억에 남는 세리머니는.

"한국인인만큼 큰절은 언젠가 한 번은 해보고 싶었는데 스스로 잘 했다고 생각한다. 8강전 이겼을 때는 세리머니를 하지 못한 게 아쉽다"

기량이 크게 발전했는데 특히 서브가 향상됐다.

"최근 수년간 서브로 고생을 해서 지난 동계 훈련부터 외국인 코치와 사소한 것부터 열심히 한 게 호주오픈에서 빛을 발한 것 같다"

페더러와 4강전에서 부상에 대해서.

"진통제를 맞으면서 경기를 치르다보니 발 상태가 나빠졌다. 더이상 진통제 효과를 보기 어려워 힘든 결정을 내리게 됐다"

발 사진이 공개된 후 20년전 박세리 선수의 투혼과 비교되면서 큰 이슈가 됐다.

"훌륭한 선수와 비교해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물집으로 인해 기권하는 일은 없도록 잘 관리해 더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다"

인터뷰 비법은.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 익숙해졌다. 원래 편한 사람과 있으면 말이 많은 편이긴 했다"

페더러, 나달 대결 당시 볼키즈 사진이 화제가 됐다.

"그때만 해도 페더러, 나달과 한 코트에서 시합한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은퇴 전에 시합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앞으로도 같이 시합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당시에는 어려서 스폰서 시계를 지키며 3시간 정도를 서 있었다. 첫 한 시간에는 기뻤는데 나머지 두 시간은 징징대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관리 비법은.

"옆에서 많은 조언을 받지만 어릴 때부터 했던 습관이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시합 준비 잘 하는 건 어릴 때부터 기본부터 차근차근해야 한다"

발바닥 부상 상태는.

"매일 병원에 가서 체크를 했다. 몸에 큰 이상은 없다. 발바닥도 다음주부터는 정상 훈련이 가능하다고 한다. 어려서 회복이 빠른 것 같다"

호주오픈 상금 어디에 쓸건지.

"투어 선수는 상금 통장을 따로 만들어서 받는다. 나는 상금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쓰지 않는다. 통장 관리는 부모님이 하신다"

글=김현진/사진·영상= 최혁, 신세원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