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저 공동묘지 훈련 안 했어요, 따라 하지 마세요"
메이저 5승 포함 LPGA 25승 거둔 '한국 골프의 전설'
13일 은퇴식 앞두고 "안 울고 끝내면 좋겠는데…어렵겠죠"
"다음 생이 있다면 남자로 태어나 타이거 우즈와 맞서고 싶다"
"운동은 다 좋아해…중학교때 육상했고, 은퇴하면 킥복싱 배울 생각"


"뭐요, 또 결혼이요?"

박세리가 '뻔할 것'이라는 듯이 되물었다.

13일 은퇴식을 앞둔 '한국 골프의 전설'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와 마주앉아 '요즘 인터뷰를 많이 하시니 최근에 답변을 자주 하셨던 것은 가급적 또 묻지 않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자 곧바로 박세리는 "또 결혼 얘기냐"며 고개를 내저은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하는 동안 결혼에 대해서는 차마 또 물어보기가 어려웠다.

대신 메이저 대회에서 5승을 포함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25승을 거두는 등 한국 골프의 시대를 '박세리 이전과 박세리 이후'로 나눌 정도로 엄청났던 그의 운동 철학과 그동안 일부에서 잘못 알려졌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는 7일 충청남도 아산에서 열린 제97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성화 점화자로 나섰다.

공식 행사에 앞서 연합뉴스와 단독인터뷰에서 자신의 골프 인생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되돌아봤다.

그는 13일부터 인천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열리는 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이 '고별 무대'다.

1라운드가 끝난 13일에는 은퇴식도 할 예정이다.

대전 유성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버지 박준철 씨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박세리는 "사실 아직도 은퇴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마지막 18번 홀은 제게 굉장한 의미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은퇴가 이제 1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미국에서 마지막 대회가 6월 US오픈이었는데.

▲ 올해 시작할 때부터 선수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을 즐기고, 많은 추억을 남기자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시즌이 시작되니 은퇴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게 되더라. 그렇게 어느덧 6월에 스케줄을 짜면서 보니까 US오픈이 미국에서 하는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막상 그런 사실을 접하게 되니 '진짜 마지막인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다가도 또 한 달이 지나고, 대회가 시작됐지만 사실 그때도 대회를 하느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세 홀 정도 남겼을 때 '이게 정말 미국에서 마지막 경기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그러자 정말 거짓말처럼, 무슨 드라마를 보듯이 그동안 선수 생활이 필름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더라. 처음 꿈을 갖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투어에 온 것부터 시작해서 좋았던 것, 슬펐던 것, 아팠던 것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 홀을 마치고 나오는데 선수들이 몇 명 기다리고 있었다. 카리 웹도 있어서 너무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많은 것을 이뤘고 얻어서 행복하고 시원섭섭한데 또 막상 마지막 경기라고 하니 서운하기도 하고 그랬다.

-- 진짜 마지막 은퇴를 앞두고 있다.지금은 어떤가.

▲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실감은 나지 않는다.올림픽에 다녀오고 그러느라 또 은퇴를 잊고 살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지금 상태도 은퇴하고 있는 상황과 다를 바가 없기도 하다.

-- 마지막 대회인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도 출전하지 않으려고 했다던데.

▲ 사실 저는 이 대회에서 치고, 안 치고가 큰 의미가 없다. 제가 은퇴하면서 앞으로 한국 골프를 이끌고 나갈 후배에게 (출전)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젊은 선수들이 한 번이라도 더 국제 대회 경험을 쌓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어깨 상태도 좋지 않은데 괜히 나갔다가 '아, 저래서 은퇴하는구나' 하는 얘기도 듣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다. 팬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팬들이 제가 경기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하실 수도 있고 그래서 일단 1라운드에 나서기로 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심란하다.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마지막 홀 퍼트를 하고 나면 눈물 말고 밝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마지막 순간 18번 홀이 제게 굉장한 의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올해 US오픈이 끝나고 나서와 올림픽 금메달이 확정된 이후 울었는데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인가.

▲ TV를 보다가 감동적인 것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오는 편이다. 경기할 때는 표정이 없어서 강하다고 생각하시지만, 눈물이 없는 편은 아니다. 특히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해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저도 그런 과정을 겪어서인지 공감이 돼서 더 그렇다.

-- 그동안 어릴 때 '공동묘지' 훈련을 한 것으로도 잘 알려졌는데.

▲ 거짓말이다. 한국의 많은 골프장은 산을 깎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근처에 묘지가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울이 아닌 지방은 더욱 그랬다. 연습을 늦게까지 하고 내려가다 보면 조명도 없을 때라 근처에 무덤이 보여서 무서워하고 그랬던 것이 와전됐다. 그런데 후배들이 와서는 '언니, 저도 공동묘지 훈련 했어요'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나는 안 해본 건데.

-- 메이저리그 박찬호 선수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진출하지 않았나.

▲ 저보다 1년인가 먼저 미국에 가셨나 그랬을 거다. 같은 공주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그건 사실과 좀 다르다. 저는 골프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가느라 공주에서 생활했지 공주 출신은 아니다. 그래서 박찬호 선수를 처음 본 것도 둘 다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잠시 한국에 왔을 때(1998년)인데 제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했고 박찬호 선수가 문병을 오셨을 때였다. 그때 '힘든 것 다 아니까 기운내라'며 응원,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종목이 달라서 자주 교류를 하지는 못했지만, 작년인가부터 연락도 가끔 해주셔서 뵙고 있다.

-- LPGA 투어 생활 초기에 김미현, 박지은과 경쟁의식이 지나쳐서 '사이가 나쁘다'는 소문도 있지 않았나.

▲ 아니다. 사실 언론에서 라이벌로 만들어 간 부분이 있을 뿐이다. 선의의 경쟁을 한 것은 당연하다. 대회에 나가서 누구나 우승하려고 했기 때문에 경쟁했지만 다들 우승을 원한 것이지 상대 선수에 대한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에 김미현 프로가 올림픽에 해설위원으로 와서 이야기도 좀 했지만 나는 선수들 관리하느라 바빴고, 김미현 위원은 중계를 준비하느라 서로 정신이 없었다.

-- 평소 후배들에게 '즐기면서 하라'고 주문하지만, 즐기면서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 그게 진짜 어려운 것이다. 일단 사람이 목표가 있으면 그때는 즐길 여유나 다른 곳에 시선을 둘 마음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끝난 뒤에 여가를 최대한 많이 가지라는 의미다. 최고의 자리에 가려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서는 할 수 없다는 말도 맞다. 대회에 나가서 '공이 잘 안 맞으면 어때' 하는 생각으로 대충 치라는 얘기가 아니다. 훈련을 마치고 다음 훈련을 시작하기 전까지 100% 충전을 다시 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 2004년 슬럼프로 무척 고생하지 않았나.

▲ 저는 정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슬럼프가 언젠가 올 것'이라며 거기에 대해 대비까지 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슬럼프라는 것은 아무리 대비를 해도 오게 되어 있다. 그것은 제가 게을러서가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다.사람이 '힘들지도 않고, 괜찮다'고 하지만 그것은 힘든데도 최면을 거는 것이다.우리가 쓰는 스마트폰도 많이 쓰면 배터리가 다 닳아서 꺼지지 않나.기계도 많이 쓰면 오작동이 나오는데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내 꿈을 이루러 가는 과정에 충전은 필요하다.슬럼프에 빠지면 거기서 나올 수 있는 것도 나 자신밖에 없다.그래서 후배들에게 '충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 쉬면서 충전하는데 골프를 치자는 사람도 있지 않나.

▲ 정말 싫다.쉬는데 골프 치자는 사람은 '웬수' 되는 거다.(웃음) 저는 골프가 직업인데 쉴 때 골프를 치자고 하면 쉬는 게 쉬는 게 아니게 된다. 그런데 선수였을 때는 그렇지만 은퇴하고 나면 이제 직업이 아닐 테니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 US오픈에서 미국 언론이 '박세리는 한국의 아널드 파머'라고 했는데 최근 파머가 타계했다.

▲ 어르신은 골프에 굉장히 많은 공헌을 하신 분 아니냐. 골프 산업이 이만큼 성장한 것도 그분의 노력이 컸다고 알고 있다. 그런 부분이 존경스럽고 나도 그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인연이 많지는 않지만 내가 세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때 입회식에 계셨다. 또 명예의 전당에 그분과 잭 니클라우스 사이에 제 얼굴이 있기도 하다.

-- 최근 다음 생이 있다면 남자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 여자 선수는 해 봤으니 다음 생에 태어나면 남자 선수도 한번 해보고 싶다. 만일 된다면 타이거 우즈와 맞설 수 있는 실력자로 태어나고 싶다. 타이거는 골프 역사에서 그 선수만큼 모든 것을 갖출 선수가 언제 나올까 싶은 존재다. 만일 나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 정도 천재성을 갖고 태어나면 좋겠다.

-- 전국체전 성화를 점화했지만 실제로 체전에 나온 적은 없지 않나.

▲ 전국체전은 없다. 중학교 때 육상 선수로 소년체전은 나갔다. 성적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단거리, 중거리 뛰었고 400m 계주도 나갔다. 3등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 골프 외에 좋아하는 운동이 있나.

▲ 운동은 다 좋아한다. 스노보드 타는 것을 좋아해서 겨울마다 간다. 킥복싱이나 요가도 좋아한다.

-- 킥복싱을 좋아한다니.

▲ 선수 때 못했으니까 이제 은퇴하고 운동 삼아 해볼까 한다는 얘기다. 킥복싱 한다고 그러면 저 시집 못 갈지도 모르니 기사 잘 쓰셔야 한다. (웃음)

(아산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email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