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회 전국체육대회 마라톤 남자 일반부 경기가 열린 21일 대전 한밭종합운동장. 시도를 대표해 나온 50여 명의 건각이 출발선 앞에 섰다.

그 가운데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9.삼성전자)도 있었다.

1990년 전국체전에서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던 이봉주에게 이번 체전은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접는 은퇴 무대였다.

반환점을 돌아 출발선으로 되돌아오는 마라톤 순환코스처럼 전국체전은 마라토너 이봉주의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

천안 출신이라 충남 대표로 나선 이봉주는 "고향을 위해서도 마지막 레이스를 이번 체전에서 펼치고 싶었다"고 말해 왔다.

오전 8시 출발 총성이 울렸는데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 공옥희 씨는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일찌감치 경기장에 나와 아들의 마지막 레이스를 함께 했다.

공 씨는 "안쓰러워 그 동안 경기를 못 봤다.

오늘은 끝이라니까 나왔다"고 말했다.

공 씨는 또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고 혼란스러운 속마음을 살짝 드러내면서 아들의 마지막 경기에 힘을 불어 넣어달라고 하자 "아들 파이팅 해라. 힘내고!"라고 짧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레이스에는 수십 명의 취재진의 몰려 이봉주에 대한 관심을 짐작케 했다.

이봉주는 출발하기 전 이례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한 대회 한 대회를 치를 때마다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까지도 그런 마음을 지울 수 없다"면서 "그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경기를 뛸 때마다 그런 성원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국민의 사랑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긴장한듯 굳은 표정으로 팔다리를 흔들며 몸을 풀었다.

어머니 공 씨가 출발선 앞에서 "아들 파이팅!"을 외쳤지만 들리지 않는 듯 계속 몸을 푸는 데 열중했다.

이후 맨 앞줄 가운데에 서 있던 이봉주는 굳은 표정으로 어머니 쪽을 몇 차례 바라보더니 총성과 함께 선두 그룹에 섞여 힘차게 달려나갔다.

이봉주는 5㎞ 지점부터 맨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리고는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출근길의 시민과 등교하던 학생들은 발길을 멈추고 무슨 일인가 하고 두리번거리다 레이스를 이끈 이봉주를 알아보고는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이봉주는 20㎞ 지점을 지나면서부터 더욱 힘을 냈다.

반환점을 돌면서 레이스는 이봉주와 유영진(30.충북)의 2파전 양상으로 전개됐고, 2위 그룹은 저만치 밀려났다.

30㎞ 지점이 지나면서 이봉주의 독주는 시작됐다.

이봉주는 유영진과 격차를 100여m 정도로 늘렸다.

35㎞ 지점을 통과한 뒤로는 이봉주 뒤로 까만 점처럼 보이던 유영진의 모습조차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다.

가장 힘들다는 시간대였지만 이봉주의 동작이나 표정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한밭종합운동장으로 들어온 이봉주는 여유있게 트랙을 돌며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꽃다발을 받고 오인환 감독 등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을 때, 그제서야 유영진이 2위로 들어왔다.

이봉주의 완벽한 독주였다.

우리 나이로 마흔인 그가 은퇴 무대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한국 마라톤의 현실이 서글퍼질 정도였다.

2위 유영진은 "따라가겠다는 생각으로 뛰었는데 봉주형 몸 상태가 의외로 좋았다.

중간부터 치고나가는 페이스가 너무 좋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어머니 공 씨를 비롯해 부인 김미순 씨, 어린 두 아들 우석.승진 군 등과 잠시 포옹을 하고 인사를 나눴다.

취재진의 요구로 어머니, 두 아들과 입맞춤을 하면서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부인 김 씨는 "수고했어요.

미안해요, 애들 때문에 아침에 일찍 못 나와서"라며 남편 앞에 섰다.

이봉주는 "큰 짐을 덜어놓은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면서 "이제 좀 쉬면서 앞으로 계획을 고민해보게겠다"고 말하고 나서 공식 은퇴식이 열릴 충남도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전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