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해즐타인내셔널GC(파72)에서 치러진 남자골프 메이저대회 USPGA챔피언십의 최종 라운드 챔피언조는 타이거 우즈(34 · 미국)와 양용은(37 · 테일러메이드)이었다. 3라운드까지 우즈가 2타 앞선 데다,메이저대회 마지막날의 중압감 등으로 보아 우즈의 낙승이 예상됐다.

전문가들은 앤서니 김,파드리그 해링턴,로코 메디에이트 등 지금까지 숱한 선수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양용은은 우즈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게임은 싱겁게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4라운드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흘렀다. 양용은은 평상시와 다를 것 없이 덤덤하게 플레이를 한 반면 우즈는 무언가에 짓눌린 듯 표정이 밝지 않았다. 우즈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던 결정적 순간의 퍼트는 번번이 홀을 외면했다. 전반에 2타를 잃은 우즈는 양용은에게 공동 선두를 허용했고,11번홀(파5) 버디로 다시 1타 앞섰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어진 12번홀(파4)에서 세 번째 보기를 범했기 때문.13번홀(파4)에서는 우즈가 3m 버디퍼트를 놓치고 양용은 벙커샷 후 2m 파세이브 퍼트를 넣으며 공동 선두를 이어갔다.

중간 합계 6언더파로 팽팽하게 맞서던 양용은과 우즈의 승부는 14번홀(파4)에서 갈렸다. 301야드로 짧게 셋업된 이 홀에서는 적어도 버디를 잡아야 했다.

그린을 향해 날린 양용은의 드라이버샷은 그린에서 약 20m 못미친 그린사이드 벙커 턱에 있는 러프에 빠졌다. 역시 드라이버를 잡은 우즈의 티샷은 벙커에 빠졌다. 우즈는 벙커샷을 홀 옆 2m 지점에 떨어뜨리며 버디 기회를 만들어 놓았다. 이번엔 양용은 차례.러프인데다 라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탓인지 양용은은 굴리는 샷을 택했다. 살짝 떠올랐다가 그린에 떨어진 볼이 홀을 향해 굴러가는가 싶더니 이내 깃대를 맞고 홀 속으로 사라졌다. '황제'의 기를 단숨에 꺾어버린,결정적 순간의 파4홀 이글이었다. 주먹을 휘두르며 환호성을 지르는 양용은의 기세 앞에 우즈는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버디 퍼트를 넣지 못하면 2타 차 2위로 밀리는 위기 상황이었다.

우즈는 양용은의 이글 여운이 남은 상태에서 쉽지 않은 버디 퍼트를 집어넣어 1타 차로 따라 붙었지만 승부의 추는 양용은 쪽으로 조금 기운 듯한 분위기였다.

남은 것은 네 홀.1타 차의 승부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계속됐다. 17번홀(파3)에서 양용은은 클럽 선택을 잘못한 데다 버디 퍼트마저 짧게 쳐 보기 위기를 맞았지만 우즈 역시 클럽 선택 실수로 티샷이 그린을 넘어간 뒤 두 번째 샷마저 턱없이 짧아 파세이브에 실패했다. 둘 모두 보기로 우즈의 실수가 양용은의 부담을 덜어준 셈이 됐다.



한 홀 남기고 1타 승부를 벌이던 두 선수의 희비는 18번홀(파4) 두 번째 샷에서 확연히 갈렸다. 홀까지 206야드를 남기고 자신의 '만능 클럽' 인 하이브리드를 잡은 양용은은 나무를 넘겨 홀을 곧바로 노리는 공격적인 샷을 구사했고 볼은 홀 옆 2m 지점에 떨어져 버디 기회가 됐다. 그 반면 버디를 잡아야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우즈는 그린 왼편에 꽂힌 핀을 향해 치다가 볼을 러프에 빠뜨리고 말았다.

우즈가 러프에서 친 세 번째 샷이 홀을 1.5m가량 지나가자 양용은의 우승은 현실이 됐다. 2퍼트로 파만 잡아도 우승이지만 양용은은 '황제'와 세계 골프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멋진 버디 퍼트로 우승을 자축했다. 이글샷 한 방으로 잡은 리드를 끝까지 지켜낸 양용은의 뚝심과 침착함이 '기적'으로 나타났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