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침체의 늪에 빠졌던 한국 마라톤이 지영준(28.경찰대)의 부활로 재기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10년 이상 간판으로 활약해 온 이봉주(39.삼성전자)가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상황에서 그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를 발굴하지 못해 애태웠던 육 상계는 지영준이 2시8분30초의 개인 최고기록으로 12일 대구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새로운 영웅을 맞이했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 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우승하고 이봉주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세계 중심에 다가섰던 한국 마라톤은 그러나 명맥이 끊겨 이봉주 혼자 뛰 는 양상으로 흘렀고 속도전으로 치닫는 세계적인 추세에 뒤처져 변방으로 밀려났다.

마라톤 한국 기록은 이봉주가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작성한 2시간7분20초이다.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갖고 있는 세계기록 2시간3분59초에 4분 가까이 뒤진다.

지영준이 이날 쓴 2시간8분대 기록도 이봉주가 2007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세운 2시간8분04초 이후 2년 만에 나온 것이다.

그만큼 한국 마라톤은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영원한 다크호스'였던 지영준이 드디어 껍질을 깨고 마라톤을 이끌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희망을 봤다.

지영준은 지난달 15일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10분41초로 국내 선수 중 가장 빠른 기록을 썼고 한 달이 채 안 돼 열린 이날 대회 에서 개인 최고기록마저 6년 만에 갈아치우고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우승과 인연이 없었으나 이날 처음으로 월계관을 쓰고 단상의 주인공이 된 지영준은 중반까지 선두그룹을 형성하다 체력이 바닥날 시점인 37㎞ 이후부터 놀라운 스퍼트로 기록을 단축해 조만간 한국신기록 수립에 대한 기대도 부풀렸다.

경기 막판 전세를 뒤집는 일이 더욱 어 려워진 현 속도전 추세에서 지영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 속도를 유지하면서 레이스 후반 폭발적인 스퍼트로 마라톤 최강 케냐 철각들을 쉽게 따돌렸다.

이종찬 대한육상경기연맹 마라톤 기술위원장은 "모처럼 좋은 기록이 나왔다.

지영준이 코오롱 소속으로 현재 경찰대에서 군 복무 중인데 실업팀에서 훈련했을 때와 비교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우승을 일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영준은 고교 시절부터 5,000m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대학, 실업팀을 거치며 체계적으로 마라톤을 배운 선수다.

기본적으로 속도를 낼 줄 아는 선수이고 유연성과 체력을 겸비해 이봉주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로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

이 위원장은 "당장 세계 수준으로 기량이 올라갈 수는 없지만 지영준의 나이가 젊어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겨냥해 준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희망적인 전망을 내놨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