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칼리파 스타디움.

100m 피니시라인 바로 위 관중석에 앉은 미야카와 지아키(59.일본) 코치는 상념에 잠겨 있었다.

옆에서 말을 걸어도 바로 대꾸를 하지 못할 만큼 뭔가에 골몰했다.

지난 9일 도하에 온 미야카와 코치는 한국 육상 단거리 대표팀 코치다.

2003년 말 국내 지도자들을 상대로 순회 강연을 하다 한국 육상과 인연을 맺은 미야카와는 벌써 3년째 한국 스프린터들을 조련하고 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이토 고지(일본)가 10초00으로 100m 아시아기록을 세울 때 일본 육상대표팀 감독이던 그는 '0.01초의 단거리 승부사'로 불려왔다.

일본육상연맹 강화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거쳐 지금은 도카이대학 체육학과에서 후학을 길러내는 교육자다.

그는 면도를 전혀 하진 않은 얼굴이었다.

며칠째 잠을 설친 듯 까칠한 피부에 눈마저 쾡해보이는 상태였다.

스타트 총성이 울렸다.

한국 단거리의 마지막 레이스 400m 계주.

전덕형(충남대)이 제1 주자로 나섰고 임희남(상무), 임재열(충남대)이 바통 터치를 한 다음 앵커맨 박평환(조선대)이 질주했다.

일본, 카타르, 오만에 이어 4위. 레인에 나선 다섯 팀 가운데 쿠웨이트가 바통을 놓쳐 완주하지 못했으니 결국 꼴찌였다.

18년만에 경신해보겠다던 한국기록(39초43)보다 1초 이상 늦었다.

미야카와 코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디론가 휙 가버렸다.

그는 임희남, 전덕형 등이 100m와 200m를 뛸 때에도 현장을 지켰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육상연맹 직원들은 전했다.

그 때도 결과는 참패였다.

미야카와는 그동안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견제를 받았다.

처음 육상연맹의 순회코치로 왔을 때는 국내 지도자들이 '왜 우리가 일본인에게 단거리를 배워야 하느냐'며 반발에 부딪혔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쓸데없이 한국에 가서 봉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닦달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벌써 3년째 한국 육상과 인연을 맺고 있다.

미야카와는 지난 달 단거리 대표팀 전지훈련 도중 "이번에는 깨질 것 같다.

결선에 오르면 그게 곧 한국기록이 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하지만 27년 묵은 100m 한국기록(10초34)은 여전히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난공불락의 벽으로 남았다.

1970년대 현역 생활을 하면서 자신도 10초3대 기록을 낸 미야카와 코치는 자신감이 땅바닥에 떨어진 한국 단거리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해왔다.

일본에선 A급 지도자이지만 한국에선 특급 대우도 없었다.

그래도 묵묵히 10초5, 10초6대 스프린터들을 훈련시켜 그나마 0.1-0.2초라도 기록을 단축했다.

손주일 단거리 코치는 "참 애를 많이 쓰셨다.

우리 단거리 선수들이 비록 기록을 깨진 못했지만 많이 배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하=연합뉴스)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