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모두 하늘에 계시지만 (제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금메달까지 딸 수 있게 보살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13일 마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복싱 웰터급 결승전에서 접전 끝에 리치코 세르게이(카자흐스탄)에 역전승을 거둔 김정주(21.상지대)는 사흘 뒤 쯤 경상남도 진주 금곡면에 있는 부모님 산소을 찾아 빛나는 금메달을 보여드릴 계획이다. 김정주의 아버지(고 김춘오씨)는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간암으로, 어머니(고전금아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아마추어 데뷔전을 치르는 동안 집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 이후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김정주는 한 마디로 "힘들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다행히 벽돌공장을 하던 부친이 남긴 재산이 약간 있어 누나들과 근근이 생활해올 수 있었던 그는 부모님이 계신 아이들만 봐도 기가 죽곤 했었다. 부모 없는 설움과 자칫 나쁜 길로 빠져들 수 있었던 위기를 복싱으로 달래온 김정주는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과 중학교 선배들의 권유로 중학교 2학년 때 복싱을 시작했다. 워낙 주먹이 세 장난으로 아이들을 때렸는데 모두 울고 말았다는 게 그의 고백. 1남 2녀 중 막내인 그에게는 누나들의 도움도 컸다. 특히 큰 누나 김정애(28)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4년 장학생으로 대학을 다니며 조교 월급까지 생활에 보탰고, 행여 동생들이 잘못될까 노심초사 하느라 제대로 연애 한번 못해봤다고 한다. 그런 누나가 이제 종균배양연구소에 근무하는 성실한 동갑 청년과 결혼한다. 김정주는 대한복싱연맹으로부터 금메달 포상금(1천만원 예정)을 받으면 동갑내기 여자친구 권진옥 씨와 커플 휴대폰을 장만한 뒤 나머지는 모두 누나 시집 밑천으로 주겠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같은 경사가 있는가 하면 지난해 2월에는 자신이 태극마크를 다는 것을 꼭 보고 싶다던 큰 아버지 김춘석씨가 지병과 이혼을 비관해 제초제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있었다. 허리 등에 고질병이 있어 오래전부터 집에서 두문불출해야 했던 큰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김정주의 아버지는 1억5천만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은 뒤 벽돌 공장 문을 닫아야 했었다. 장학생인 그의 꿈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중학교 체육 교사가 되는 것. 젊은 나이에 너무도 많은 비극에 시달린 김정주이지만 티없이 해맑은 표정에서 곧 꿈이 이루어질 것임을 읽을 수 있었다. (부산=연합뉴스)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