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경영상 꼭 필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대표의 남편에게도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확정됐다. BW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자가 정해진 가격에 발행회사의 신주를 사들일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반려견과의 소통을 돕는 스마트기기 제조업체 A사는 BW 발행을 무효로 한다는 법원 판결에 항소하지 않기로 최근 결정했다. 앞서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민사2부는 지난해 11월 A사 주주인 B씨가 제기한 BW 발행 무효 확인 소송에서 “경영진의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를 위해 BW를 발행했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이번 사건은 A사가 2021년 5월 대표이자 대주주인 C씨의 남편 D씨를 상대로 1억원 규모 BW를 발행하면서 비롯됐다. D씨는 이전까지 A사 주식을 한 주도 보유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A사는 BW 발행을 결정했던 주주총회 의사록에 “사업 확장과 재무구조 개선 목적”이라고 발행 이유를 적었다.

이에 B씨는 “이번 BW 발행은 상법 위반이기 때문에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상법 418조는 기업이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한 경우에만 정관에 정해진 바에 따라 제3자를 상대로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B씨는 “A사가 내 주식 가치를 희석하면서 C씨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D씨에게 BW를 발행했다”고 주장했다.

D씨가 BW에 붙은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면 A사 신주 20만 주를 손에 쥔다. 그러면 이 회사 주식 4만4000주를 보유 중인 B씨의 지분율은 19.3%에서 10.2%로 떨어진다. 반면 C씨와 D씨의 합산 지분율은 80.9%에 달한다. 현재 C씨의 지분율은 64.2%(14만6000주)다.

A사는 “D씨가 대표로 있는 E사로부터 반려견용 스마트기기 원천기술을 이전받으면서 사업 자금도 조달하기 위해 이 같은 방식으로 BW 발행을 결정했다”고 반박했다. 2021년 E사의 스마트기기 관련 특허권(1월)과 상표권·디자인권(9월)을 양도받은 사실을 근거로 내세웠다. 만성적인 자금 부족을 겪던 차에 스마트기기 사업을 키우기 위해선 신규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A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스마트기기 특허권 등을 양도한 시점은 BW 발행 시기와 상당한 간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무구조 개선 목적”이라는 A사 주장에 대해서도 “BW 발행 전 법인 계좌에 3억원 상당의 보통예금이 있었고 발행한 지 이틀 후 은행으로부터 20억원을 대출받기도 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