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프리미엄’은 코인거래소의 암호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높게 형성되는 현상을 말한다. 외국에서는 1000원상당으로 살 수 있는 암호화폐가 국내에선 1100원에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다. 통상 시장이라면 금세 해소될 가격차이다. 이득을 노리고 싼 곳에서 산 다음 비싼 데서 파는 거래가 쉽게 이뤄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국내 암호화폐 시장은 외국인 거래가 막혀있기 때문에 암호화폐 시장에선 어려운 얘기다.

해외로 돈을 보내 현지 거래소에서 외화로 비트코인을 산다고 해보자. 그 비트코인을 다시 한국 거래소에서 판다면 그 사람은 가격 차이만큼 이익을 얻게 된다. 거래한 사람은 이익을 얻었지만 국가 차원에서의 득실은 다른 얘기다. 외국에서 채굴된 비트코인을 국내에 가져오는 대신 외화가 유출되는 꼴이기 때문이다. ‘가짜 돈’이 들어오는 대신 ‘진짜 돈’이 유출되는 상황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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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빗썸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빗썸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검찰은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시중은행을 통해 불법 외환 거래를 해온 일당을 재판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4조3000억원이 고스란히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 이 과정에 모두 연루됐다. 은행들은 ‘실적 경쟁’ 분위기 속에서 불법 해외 송금을 막아야 한다는 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나욱진)와 서울본부세관 조사2국(국장 이민근)은 최근 외국환거래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4개 조직 총책과 브로커 등 11명을 구속 기소하고 9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해외로 도주한 1명은 지명수배를 내렸다.

이들은 마치 보이스피싱 조직처럼 조직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조직들은 모두 무역대금으로 꾸며 외화를 송금했다. 총책은 국내 코인 거래소의 시세가 해외보다 높을 때 송금 지시를 내렸다. 중간책이 송금액과 수익 배분율 등을 송금팀에 전달하면, 송금팀은 은행에 송금을 신청했다. 해외팀은 들어온 돈으로 현지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구입해 국내 거래소로 전송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연합뉴스
검찰에 따르면 이들 조직의 무역회사로 입금한 계좌의 명의인은 총 256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총책 등 주범들은 투기자금을 제공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다단계식으로 자금원을 모았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돈을 맡긴 이들의 공모 여부나 범행 가담 여부를 세밀하게 분석해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페이퍼컴퍼니인 송금업체는 최대 수백억원에 달하는 돈을 하루에도 여러번 해외로 송금했지만 은행들은 암호화폐 거래, 자금세탁 연루 등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영업점이 외환 송금 고객을 유치하는 데 혈안이 돼 송금사유나 증빙서류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계속된 범행이 가능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특히 한 시중은행 지점에선 4개월간 320여 회에 걸쳐 ‘반도체 개발비’ 명목의 1조4000억원 규모 외화 송금이 계속됐지만 담당 직원은 추가 증빙자료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이 직원은 실적을 냈다며 포상까지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적시에 개입해 불법 송금을 차단하지 못하는 이상 본건과 같은 단기간 ‘치고 빠지기’ 형태의 송금을 막을 수 없다”며 “향후 은행권과 금융당국이 연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