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과 송강호가 부부로 깜짝 출연한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 시즌 2’가 뜨겁다.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사진)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198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성진은 생후 9개월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 3~5학년을 보낸 뒤 다시 미국으로 갔다. 한때 ‘소니 리’라는 영어식 이름을 썼다. 미국 사람이 이성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작가로 이름을 올린 작품은 2008년 미국 시트콤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이다. 그는 ‘아웃소스드’ ‘실리콘밸리’ ‘데이비드’ 등에서 각본 작업을 맡으며 존재감을 꾸준히 키웠다.‘성난 사람들’은 그가 각본과 연출을 동시에 맡은 대표작이다. 2023년 4월 공개 직후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2024년 골든글로브 TV 미니시리즈 부문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 등 3관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크리틱스초이스 4관왕, 에미상 8관왕을 차지했다.이 작품의 출발점은 그가 로스앤젤레스에서 겪은 ‘로드레이지’(난폭운전) 경험이었다. 이성진은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자기 상처를 키우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최한종 기자
“번역 영역에서 인공지능(AI) 활용은 시대적 요구입니다. AI와 공진(共進)하는 고급 번역가 인력을 양성하겠습니다.”한국 문학과 문화예술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번역인력을 양성하는 한국문학·문화예술콘텐츠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이 본격 추진된다. 2027년 개교가 목표다.한국문학번역원은 28일 서울 중구 프레이저플레이스 남대문에서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추진위원회 발족식을 열고 설립 계획과 비전 등을 발표했다.설립추진위는 총 9인으로 구성됐다. 시인 나태주·도종환·문정희, 소설가 은희경·황석영, 문학평론가 권영민·유성호, 영화 '기생충' 번역가 달시 파켓 등이 참여한다. 한국문학에 꾸준한 후원을 이어온 박은관 시몬느 회장도 추진위에 함께한다.한국문학번역원은 2008년부터 국내 유일의 한국문학·문화콘텐츠 전문 번역 교육과정인 번역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지금까지 1600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하지만 2년의 전문적 교육과정 이수 후에도 학위가 없는 터라 학위 기반의 전문 경력을 이어가는 데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또 비학위 과정으로 운영되는 탓에 우수 교수진과 학생 유치에도 한계가 있고, 국내외 대학 및 유관기관과 협력에도 어려움이 있었다.이에 번역원은 더 체계적이고 고도화된 전문 번역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문학진흥법에 따라 번역아카데미를 석사과정으로 전환하는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교육부에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계획서를 제출하고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다.번역대학원대학교는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등 7개 전공 석사과정을 운영한다. 향후 박사(후)
"뮤지컬을 잘 써도 얼마를 벌 수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진입 자체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죠."한정석 뮤지컬 작가는 27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뮤지컬 분과 회의에서 창작자들이 겪는 불확실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정작 작품을 쓰는 창작자들은 작품이 어떤 보상으로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문제는 창작자들이 생계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 작가는 "이 일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내 삶을 걸어도 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이날 회의에서는 표준계약서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 작가는 "웹툰이나 드라마, 영화는 신인 창작자에게 적용되는 표준 요율이 있어 이를 기반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지만 뮤지컬계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계약조건이) 적정한지 판단하기 어려워 일단 계약을 체결한 후 나중에야 불리한 조건임을 알게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이성훈 쇼노트 대표도 "표준계약서를 만든 지 10년이 지났고, 지금까지 산업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며 "창작자의 권익뿐 아니라 시장 변화까지 반영한 '표준계약서 2.0'을 논의할 시점"이라고 말했다.한편 이날 회의에서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뮤지컬 산업의 인력 양성·저작권 보호·인프라 확충 등을 담은 뮤지컬산업진흥법이 올해 안으로 제정되도록 국회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뮤지컬산업진흥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본회의까지 상정됐지만, 2024년 5월까지 이렇다 할 논의 진척이 없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어린이책은 뮤지컬 등 수많은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성인 도서만큼의 수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아쉽습니다.”출판업계는 27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출판 분과 회의에서 어린이 도서 수출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소영 문학동네 대표는 “이금이 작가를 비롯해 국내 어린이 도서 작가들의 해외 활동이 굉장히 활발한데 그에 비해 지원이 적다”고 했다.한국 어린이책에 대한 해외 관심은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도서 행사인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는 한국 그림책이 주요 전시의 중심에 서고 있다. 최근 이금이 작가는 볼로냐 도서전 개막식에서 발표되는 안데르센상 글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다만 어린이책은 구조적으로 수출이 까다로운 분야로 꼽힌다. 아동 도서와 관련해선 각국이 자국 문화와 언어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우선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성인 도서만큼의 수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업계에선 돌파구를 콘텐츠 확장에서 찾고 있다. 김 대표는 장편 동화 <긴긴밤>처럼 도서를 원작으로 한 공연이 다시 도서 판매와 해외 진출 논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이 졸업 작품으로 뮤지컬을 올리고 싶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이후 제작사가 보고 사업화로 이어졌다”며 “지금은 세 번째 시즌까지 이어지면서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 잘 되다 보니 도서 판매로도 이어지고 있고, 아시아와 해외 진출까지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공연은 영화나 드라마
2024년 6월, 경상북도 영일만 인근에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대통령의 입으로 소식이 전해지자 주식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관련 종목 10개가 줄줄이 상한가를 기록했다.정부 고위 관계자가 “성공 확률은 20% 수준”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급등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로 끝났고, 뒤늦게 뛰어든 개인투자자들만 손실을 떠안았다. 정태성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의 신간 <히든 사이드>는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성공 확률 20%’가 아니라 ‘140억 배럴’이라는 거대한 숫자였다고 말한다. 두 정보는 같은 무게로 판단돼야 하지만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크고 선명한 숫자에 끌리고 작고 불편한 숫자는 외면하기 일쑤다.이 책은 행동경제학이라는 렌즈로 우리의 판단을 다시 들여다본다. 시장에서 반복되는 ‘내가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오른다’는 경험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인간의 인지 편향이 자리 잡고 있다.예를 들어 A바이오 주식을 주당 1만 원에 100주 샀다가 8000원으로 떨어졌고, S전자 주식을 주당 5000원에 매수해 7000원까지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손익의 크기는 같지만 체감은 전혀 다르다. 손실에서 오는 고통은 같은 규모의 이익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훨씬 크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익 난 종목은 서둘러 팔고, 손실 난 종목은 ‘언젠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 속에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심지어 거래정지를 맞기 전까지도 말이다.‘매몰비용의 오류’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왜 그 선수는 늘 4번 타자로 나설
영화 원작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앤디 위어 지음)가 4주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했다. 방송 출연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은 김애란 작가의 역주행도 눈길을 끈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전주 대비 판매량이 344.3% 급증하며 종합 2위로 올라섰다. 40~50대의 구매 미율이 74.8%를 차지했다. 인문 분야의 강세도 두드려졌다.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4위), <니체의 초월자>(9위) 등 총 3권이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최한종 기자
도로는 시시때때로 분노의 분화구로 변신한다. 경적을 울려대고 상향등을 켜면서 운전자를 위협한다. 더 심각해지면 보복 운전까지 벌어진다. 화를 내는 쪽의 말을 들어보면 한결같다. 얌체 운전을 하는 상대방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봤다고.도덕심리학 석학인 커트 그레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신간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에서 사람들 간 싸움은 본능적인 ‘위험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피해의식이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 도로에서의 싸움뿐만이 아니다. 갈등이 만연한 정치 이슈에서도 사람들의 판단은 ‘정의’나 ‘공정’이 아닌 위험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그는 인간의 분노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부터 짚는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인간은 본래부터 공격적인 포식자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사냥감’으로 살아온 피식자였다. 작은 위협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존 본능이 형성된 배경이다. 수백만 년에 걸쳐 위험을 감지하고 달아나도록 진화하면서 위험을 예민하게 경계하는 성향이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이 본능은 잡아먹힐 위험이 없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감정과 판단에도 깊게 배어 있다. 피해를 주는 누군가로 인해 내가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곤 한다. 산 속에 호랑이는 없지만 현대인은 그 대신 선거 결과, 단체 대화방에서 벌어지는 다툼, 학부모 회의가 내리는 결정을 두려워하게 됐다. 물리적 포식자가 사라진 이후에도 위험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대상만 달라졌다는 것이다.특히 SNS에 ‘피해자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고
아무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효율성도 높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 컴퓨터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 자유를 얻기 위해 이 시스템을 깰 것인가.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아이라 레빈의 <이 완벽한 날>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브램 스토커 평생공로상과 에드거 그랜드 마스터상을 수상하면서 서스펜스계의 거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그가 유일하게 남긴 SF 장편 소설이다.<이 완벽한 날>은 전지전능한 인공지능(AI) 유니가 지구를 관리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병과 가난, 전쟁이 사라진 세계. 인간은 더 이상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유니가 삶의 모든 과정을 설계하기 때문이다.완벽한 세계에도 틈새는 있다. 한쪽 눈만 다른 색을 띠고 있는 주인공 ‘칩’. 그는 유니가 통제하는 세계 바깥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동료들과 함께 벽을 넘어설 때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세계가 펼쳐진다. 유니의 바깥에 있는 세상은 가난과 고통, 불완전함이 그대로 존재한다. 그런데도 유니를 부수는 게 옳은 결정일까. AI와 함께 살아가는 지금과 맞닿아 있는 질문이다.최한종 기자
코니 윌리스(사진)는 공상과학(SF) 문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꼽힌다.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수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윌리스는 1945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태어났다. 콜로라도주립대(현 노던콜로라도대)에서 영문학과 초등교육을 공부한 뒤 교사로 일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오랜 기간 잡지에 단편을 발표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82년 <화재감시원>이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받으며 단숨에 이름을 알렸다.그의 대표작은 옥스퍼드 시간여행 시리즈다. 미래의 옥스퍼드대 연구자들이 과거로 이동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전쟁, 전염병, 인간의 선택과 희생 같은 보편적 주제를 탐구한다. 장편 <둠즈데이 북>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블랙아웃> <올클리어> 등이 여기에 속한다.그는 1987년 첫 번째 장편소설 <링컨의 꿈>으로 존캠벨상을 받았고 1992년 <둠즈데이 북>으로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석권했다. 이후에도 장·단편을 여럿 발표하며 휴고상 11회, 네뷸러상 7회, 로커스상 12회 수상이라는 이례적 기록을 남겼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SF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2011년에는 미국 SF판타지작가협회가 선정하는 그랜드마스터로 뽑혔다.최한종 기자
아무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효율성도 극단적으로 높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 컴퓨터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 자유를 얻기 위해 이 시스템을 깰 것인가.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아이라 레빈의 <이 완벽한 날>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브램 스토커 평생공로상과 에드거 그랜드 마스터상을 수상하면서 서스펜스계의 거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그가 유일하게 남긴 SF 장편 소설이다.<이 완벽한 날>은 전지전능한 인공지능(AI) 유니가 지구를 관리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병과 가난, 전쟁이 사라진 세계. 인간은 더 이상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유니가 직업과 배우자, 감정의 기복까지 조정하며 삶의 모든 과정을 설계하기 때문이다.완벽한 세계에도 틈새는 있다. 한쪽 눈만 다른 색을 띠고 있는 주인공 ‘칩’. 그는 유니가 통제하는 세계 바깥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동료들과 함께 벽을 넘어설 때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세계가 펼쳐진다.유니의 바깥에 있는 세상은 완전하지 않다. 가난과 고통, 불완전함이 그대로 존재한다. 그런데도 유니를 부수는 게 옳은 결정일까. 유니의 조상과 같은 AI와 함께 살아가는 지금과 맞닿아 있는 질문이다.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발레 아리랑’에는 아리랑 선율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익숙한 국악을 직접 끌어오는 대신 아리랑이 품은 정서와 이미지를 발레의 언어로 풀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한민국 발레 축제 기획공연으로 선보이는 이번 작품은 음악·미디어그룹 무토(MUTO)와 안무가 최수진, 이루다가 함께 만든다. MUTO는 언더그라운드 클럽 DJ, 거문고 연주자, K팝 1세대 미디어 아티스트 등으로 구성된 팀이다. 발레 축제 섭외는 대한민국발레축제추진단(BAFEKO)의 결정이었다. 전통 국악을 현대적으로 풀어온 작업 방식이 주목받았다.창작 방식은 기존 발레와 결이 달랐다. 안무나 음악이 아니라 대본에서 출발했다. 박훈규는 “대본 격의 글을 써서 두 안무가에게 드렸고, 어떤 안무가 진행될지 논의했다”고 설명했다.아리랑 선율이 등장하지 않는 만큼 제목을 둘러싼 고민도 있었다. 박훈규는 “아리랑을 넣지 말자고 계속 얘기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발레 아리랑’이라는 제목을 택한 것은 아리랑을 특정 선율이 아닌 하나의 상징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아리랑은 우리가 절망과 어려움 속에서 마음속에 마주하게 되는 하나의 큰 벽에서 비롯된다”라며 “그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연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의 중심 이미지 역시 ‘벽’이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거대한 벽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이미지에서 착안했다. 박훈규는 “새벽에 길을 나와 보면 주변의 모든 것이 벽처럼 느껴진다”며 “그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면 별빛 하나가 자신을 비추는 순간을 보게 된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2024년 6월, 영일만 인근에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대통령의 입으로 소식이 전해지자 주식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관련 종목 10개가 줄줄이 상한가를 기록했다.정부 고위 관계자가 “성공 확률은 20% 수준”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급등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로 끝났고, 뒤늦게 뛰어든 개인투자자들만 손실을 떠안았다.정태성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의 신간 <히든 사이드>는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성공 확률 20%’가 아니라 ‘140억 배럴’이라는 거대한 숫자였다고 말한다. 두 정보는 같은 무게로 판단돼야 하지만 우리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크고 선명한 숫자에 끌리고, 작고 불편한 숫자는 외면하기 일쑤다.이 책은 행동경제학이라는 렌즈로 우리의 판단을 다시 들여다본다. 시장에서 반복되는 ‘내가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오른다’는 경험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인간의 인지 편향이 자리 잡고 있다.예를 들어 A바이오 주식을 주당 1만 원에 100주 샀다가 8000원으로 떨어졌고, S전자 주식을 주당 5000원에 매수해 7000원까지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손익의 크기는 같지만 체감은 전혀 다르다. 손실에서 오는 고통은 같은 규모의 이익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훨씬 크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익 난 종목은 서둘러 팔고, 손실 난 종목은 ‘언젠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 속에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심지어 거래정지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기 전까지도 말이다.‘매몰비용의 오류’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왜 그 선수는 늘
도로는 시시때때로 분노의 분화구로 변신한다. 경적을 울려대고 상향등을 켜면서 운전자를 위협한다. 더 심각해지면 보복 운전까지 벌어진다. 화를 내는 쪽의 말을 들어보면 한결같다. 얌체 운전을 하는 상대방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봤다고. 도덕심리학 석학인 커트 그레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신간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에서 사람들 간 싸움은 본능적인 ‘위험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피해의식이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 도로에서의 싸움뿐만이 아니다. 갈등이 만연한 정치 이슈에서도 사람들의 판단은 ‘정의’나 ‘공정’이 아닌 위험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그는 인간의 분노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부터 짚는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인간은 본래부터 공격적인 포식자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사냥감’으로 살아온 피식자였다. 작은 위협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존 본능이 형성된 배경이다. 수백만 년에 걸쳐 위험을 감지하고 달아나도록 진화하면서 위험을 예민하게 경계하는 성향이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이 본능은 잡아먹힐 위험이 없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감정과 판단에도 깊게 배어 있다. 피해를 주는 누군가로 인해 내가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곤 한다. 산 속에 호랑이는 없지만 현대인은 그 대신 선거 결과, 단체 대화방에서 벌어지는 다툼, 학부모 회의가 내리는 결정을 두려워하게 됐다. 물리적 포식자가 사라진 이후에도 위험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대상만 달라졌다는 것이다.특히 SNS에 ‘피해자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신이 속한 집
정구호 패션디자이너 겸 공연연출가가 14년 만에 발레 무대로 돌아온다. 대한민국 발레 축제를 통해 새 창작 발레 ‘테일 오브 테일즈’(TALE OF TALES)를 공개한다. 정구호가 발레 연출을 맡은 것은 지난 2012년 국립발레단 ‘포이즈’ 이후 처음이다. 이번 작품은 대한민국 발레 축제 개막작 제안을 받고 새롭게 구상했다. 널리 알려진 네 편의 고전 발레 ‘라 실피드’ ‘잠자는 숲속의 미녀’ ‘지젤’ ‘백조의 호수’를 한 무대로 엮었다. 각 작품의 주요 장면과 음악, 동작을 분절해 재구성했다. 무대는 과거의 명작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 속에 담긴 감정의 유산을 오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정구호는 네 고전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발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여성 무용수 발레리나의 역할이다. 정구호는 “발레리나가 공연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 토슈즈를 신고 굉장히 어려운 난이도가 있는 동작을 요구받고 해내는 것을 보고 느껴지는 감정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여성 주인공이 겪는 감정의 흐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랑에 대한 갈망, 남성에 대한 의존, 희생과 상실, 그리고 그 감정을 통과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축을 이룬다. 무대는 무채색으로 시작해 점차 색을 얻는다.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겼다. 정구호는 “발레 고전이 갖고 있는 세계적인 스토리라인은 지금 시대에 비춰봤을 때 지나치게 희생적이어서 시대 배경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고전으로서의
“요즘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데 되묻고 싶어요. 과연 어른들은 충분히 읽고 있나요?”‘아동문학의 거장’ 하인츠 야니쉬(사진)는 21일 서울 동숭동 예술가의집에서 기자들과 만나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들이 처음 겪는 분노와 사랑 등의 감정을 제대로 알려주고 지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작가인 야니쉬는 2024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받았다.야니쉬는 짧은 형식 속에 높은 밀도의 의미를 담아내 온 작가다. 특정 교훈을 직접 전달하기보다 이미지와 리듬, 분위기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사유하도록 유도하는 게 특징이다. 야니쉬는 “한 여자아이가 내 책이 좋은 이유는 상상력으로 여백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독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초대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는 오스트리아 공영방송 ORF 라디오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물 중심 장편 라디오 프로그램 편집자로서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록해 왔다. 이 같은 경험은 그의 작품 전반에 반영돼 있다. 그는 “큰 업적을 쌓은 인물들을 보며 유년기의 사소한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야니쉬는 세계적으로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시기 아이들을 위한 문학의 역할이 더 커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쟁의 이유>라는 책에서 말하려고 했던 것은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다”라며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군복을 다 벗으면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라고 했다.야니쉬는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 후원 레지던시 사업의 일환으로
보후밀 흐라발(사진)은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출판 금지와 검열이라는 억압 속에서도 조국을 떠나지 않고 술집 주정뱅이와 가난한 예술가 등 사회 주변부 인물을 그려냈다.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고 불리는 이유다.흐라발은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브르노 지역에서 태어났다. 1935년 프라하 카렐대 법학 과정에 진학해 11년이 지난 1946년에야 졸업했다. 독일 군대가 1939년까지 체코 대학들을 폐쇄했기 때문이다.대학을 떠난 흐라발은 철도 노동자, 제철소 근로자 등으로 일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뒤에는 재활용 공장에서 종이 포장공으로 일했다. 이 같은 경험은 그의 작품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1964)에 짙게 반영돼 있다.흐라발은 시인으로 출발했다. 1948년 서정시집을 내놨는데, 공산주의 정권이 유통을 중단시켰다. 흐라발은 ‘지하 세계’에서 적극 활동했다. 대표 소설로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 <시간이 멈춘 작은 마을>이 있다.흐라발은 1997년 프라하의 한 병원 5층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려다가 떨어졌다는 게 정설이지만, 일각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도 있다. 그의 작품에 자살이 반복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최한종 기자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는 국내 금융시장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은행 예금보다 높은 이자율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창구 직원의 권유를 믿고 투자에 나섰던 이들 상당수가 원금을 잃었다. 피해자 다수는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고령층이었다.대규모 불완전판매 논란은 처음도 아니었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도 수천억원대 손실이 발생했다. 반복되는 사고는 직원들의 단순한 일탈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게 만든다.신간 <설계된 판>(Fixed)의 저자인 존 Y. 캠벨과 타룬 라마도라이는 한국의 DLF·ELS 사태를 개인금융 시스템의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낸 사례로 본다. 캠벨과 라마도라이는 각각 하버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런던정경대학(LSE) 및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금융경제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이들은 신간에서 평범한 개인의 입장에서 금융 시스템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금융 종사자에 비해 정보와 이해도가 부족한 데다, 어렵게 익힌 지식조차 빠르게 등장하는 신상품 앞에서는 금세 낡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금융회사에 이용당하기도 쉽다.저자들은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한다. 제목 그대로 ‘짜여진 판(fixed)’이라는 것이다. 자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높은 수익률을 얻고, 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며, 저축 여력도 크다.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더 비싼 금융상품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 의사결정 과정도 복잡하다. 조언을 해주는 이들이 고객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수수료와 실적을 우선하는 금융회사 직
여성 인재의 존재감은 한층 커졌다. 대기업 신입사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40%가 넘는다. 하지만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 수록 상황은 달라진다. 과장급은 30%, 차장급은 20%, 부장급은 10% 초반에 불과하다. 임원 비율은 한 자리 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신간 <여성리더 새로고침>은 원인을 역량 부족에서 찾지 않는다.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맥락이 있다는 분석이다. 남성들이 정해 놓은 맥락 안에서 성과가 해석될 수밖에 없다. 책은 ‘유리천장’ 속 살아남을 수 있는 실마리를 전한다.저자들은 대기업 임원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 요직을 거쳐 현재는 전문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리더들이다. 김문경, 강명신, 이미재, 박보경, 신정순 씨가 힘을 합쳤다.이들은 성공담만 늘어놓지는 않는다. 회의실에서 목소리가 작아지던 순간, 상사의 한마디에 흔들렸던 날, 스스로 자격을 의심하며 밤을 지새운 날까지 꺼내 놓는다. 그 경험을 토대로 쌓인 통찰을 독자들에게 전한다.책은 공감과 위로에 머물지 않고 관계와 신뢰, 감정과 맥락을 현장에서 실제로 다루는 리더십 기술을 전한다. 신임 팀장이 현장에서 처음 마주하는 혼란에서 출발해 임원 승진을 앞둔 시니어 팀장이 깨닫는 ‘안 쓰던 근육의 통증’까지 다룬다.단호하게 말하되 무례하지 않은 소통법부터 비교의 함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리더십을 단단하게 세우는 방법 등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실전 도구들로 채워져 있다. 각 장마다 실제 조직 현장의 사례가 이론과 맞물려 전개되는 방식이라 읽는 내내 ‘내 얘기와 맞닿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최한종 기자
영화 원작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영화 특별판)>(앤디 위어 지음)이 2주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멘토’ 피터케이의 첫 저서 <피터케이의 이기는 투자 불변의 법칙>이 출간과 동시에 2위에 올랐다. 인문 분야에서는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3위), <니체의 초월자>(7위) 등 총 3권이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니체의 초월자>는 전주 대비 판매량이 55.6% 증가했다.최한종 기자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는 국내 금융시장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은행 예금보다 높은 이자율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창구 직원의 권유를 믿고 투자에 나섰던 이들 상당수가 원금을 잃었다. 피해자 다수는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고령층이었다.대규모 불완전판매 논란은 처음도 아니었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도 수천억원대 손실이 발생했다. 반복되는 사고는 직원들의 단순한 일탈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게 만든다.신간 <설계된 판>(Fixed)의 저자인 존 Y. 캠벨과 타룬 라마도라이는 한국의 DLF·ELS 사태를 개인금융 시스템의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낸 사례로 본다. 캠벨과 라마도라이는 각각 하버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런던정경대학(LSE) 및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금융경제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신간에서 평범한 개인의 입장에서 금융 시스템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금융 종사자에 비해 정보와 이해도가 부족한 데다, 어렵게 익힌 지식조차 빠르게 등장하는 신상품 앞에서는 금세 낡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금융회사에 이용당하기도 쉽다.저자들은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한다. 제목 그대로 ‘짜여진 판(fixed)’이라는 것이다. 자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높은 수익률을 얻고, 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며, 저축 여력도 크다.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더 비싼 금융상품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 의사결정 과정도 복잡하다. 조언을 해주는 이들이 고객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수수료와 실적을 우선하는 금융회
충남 공주 제민천 일대는 한때 관공서와 병원이 모여 있던 중심지였다. 하숙집이 줄지어 늘어섰고 대형 극장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신도심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점차 쇠락했다. 셔터를 내린 가게들 사이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고 골목은 활기를 잃었다.그랬던 제민천 주변이 다시 바뀌고 있다. 특색 있는 가게가 하나둘 들어서면서다. 특히 서점은 특유의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공주의 골목과 잘 맞아떨어졌다. 독립서점들은 ‘텍스트힙’(독서를 멋있는 행위로 소비하는 흐름) 열풍을 타고 골목을 대표하는 ‘힙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24년 이곳에 문을 연 ‘책방, 잇다’ 우주희 책방지기는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가게를 둘러보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2019년 ‘가가책방’을 연 서동민 책방지기는 “처음엔 사람이 거의 없는 조용한 동네였다”고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인근에 독립서점은 전무했다. 그는 심리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의 동네일수록 책방이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그가 운영하는 무인 책방은 방문객들이 남긴 쪽지로 벽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길이 정비되고 문화 공간이 하나둘 생기면서 제민천 일대 분위기는 빠르게 달라졌다. 독립서점뿐 아니라 갤러리와 공방도 자리 잡았다. 서점의 인기가 높아지자 직접 책을 만들어볼 수 있는 ‘책공방 북아트센터’도 지난해 문을 열었다.제민천은 주민에게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책방, 잇다는 떡볶이 가게가 있던 자리에 들어섰다. 방문객이 틀어박혀 독서에 몰입할 수 있게 돕는 구석 공간은 시간을 천천히 느끼게
여성 인재의 존재감은 한층 커졌다. 대기업 신입사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40%가 넘는다. 하지만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 수록 상황은 달라진다. 과장급은 30%, 차장급은 20%, 부장급은 10% 초반에 불과하다. 임원 비율은 한 자리 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신간 <여성리더 새로고침>은 원인을 역량의 부족에서 찾지 않는다.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맥락이 있다는 분석이다. 남성들이 정해 놓은 맥락 안에서 성과가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유리천장' 속 살아남을 수 있는 실마리를 전한다.저자들은 대기업 임원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 요직을 거쳐 현재는 전문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리더들이다. 김문경, 강명신, 이미재, 박보경, 신정순 씨가 힘을 합쳤다.이들은 성공담만 늘어놓지는 않는다. 회의실에서 목소리가 작아지던 순간, 상사의 한마디에 흔들렸던 날, 스스로 자격을 의심하며 밤을 지새운 날까지 꺼내 놓는다. 그 경험을 토대로 쌓인 통찰을 독자들에게 전한다.책은 공감과 위로에 머물지 않고 관계와 신뢰, 감정과 맥락을 현장에서 실제로 다루는 리더십 기술을 전한다. 신임 팀장이 현장에서 처음 마주하는 혼란에서 출발해 임원 승진을 앞둔 시니어 팀장이 깨닫는 '안 쓰던 근육의 통증'까지 다룬다.단호하게 말하되 무례하지 않은 소통법부터 비교의 함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리더십을 단단하게 세우는 방법 등 현장에서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실전 도구들로 채워져 있다. 각 장마다 실제 조직 현장의 사례가 이론과 맞물려 전개되는 방식이라 읽는 내내 '내 얘기와 맞닿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제주에는 바다와 오름을 잇는 길만 있는 게 아니다. 섬 곳곳에 흩어진 시골 책방들을 따라 걷는 또 하나의 길이 있다. 이른바 ‘책방 올레’다. 관광지 중심의 동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돌담과 밭 사이, 바다가 보이는 들판에 작은 책방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하나의 코스로 자리 잡았다.제주 동쪽 끝자락 종달로길을 걷다 보면 ‘소심한책방’을 만날 수 있다. 2014년 문을 연 곳이다. 두 책방지기가 고심해 고른 소설과 에세이 등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선 ‘숨겨둔 책’ 코너가 눈길을 끈다. 책 커버를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매력과 특징을 힌트와 편지로 적어뒀다. 어떤 책을 선택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설렘을 안긴다. 같은 동쪽에선 ‘오조바닷가책방’도 발길을 세운다. 성산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책을 둘러볼 수 있다.남쪽으로 내려가면 서귀포에서 독립출판물이 모여 있는 ‘라바북스’를 만날 수 있다. 대규모 출판사 중심인 기존 시장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책들이 모여 있다. 머무르며 시간을 쌓고 싶다면 한경면 고산리에 있는 북카페 ‘고산의 낮, 고산의 밤’도 가볼 만하다. 6개의 1인 공간으로 구성됐다. 칸막이가 쳐진 이곳에선 대화도 금지다. 각자의 사색 공간에서 책을 마음껏 담아갈 수 있다.한경면에는 ‘책방 소리소문’도 있다. ‘작은 마을의 작은 글(小里小文)’이라는 의미로 책방 이름을 지었다. 이름처럼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이곳은 독립출판물과 인문·예술서를 중심으로 꾸려진다.제주 시내에는 독립서점 ‘나이롱책방’과 ‘아무튼 책방’도 있다.
전북 고창군 대산면 들판 한가운데에는 서로 다른 서점 여섯 곳이 모여 있다. 철학 서점부터 그래픽노블 서점, 여행·인문 서점, 시집과 독립출판물 서점, 생태 서점, 그림책 서점까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서점마을’이다.촌장은 문화평론가 이윤호 씨다. 그는 서울에서 인문학 아카데미를 운영하다 임대료 상승으로 떠나야 했고, 이후 도시에서 지내는 삶 자체를 되돌아봤다.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 것이 적정한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 것인가.”그 질문의 답을 공간으로 풀어낸 곳이 서점마을이다. 아이디어는 영국 웨일스 지역 책마을 ‘헤이온와이’에서 가져왔다. 서점지기는 모두 고창과 연고가 없는 외지인이다. 서울에서 이 촌장의 인문학 강의를 듣던 사람들이 뜻을 모았고, 우연히 고창에 땅을 갖고 있던 구성원의 제안이 더해지면서 구상은 현실이 됐다.이들은 서점마을 건립을 시작하며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규모를 지나치게 키우지 않을 것, 외부 노동에 기대지 않을 것, ‘가난할 준비’를 할 것. 이곳은 수익을 극대화하기보다 삶의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유지된다. 공동 텃밭을 가꾸고 식사를 나누며 생활을 꾸려간다. 도시의 소비 구조에서 벗어나 ‘적정한 삶’을 실험하는 셈이다.이 촌장이 보장한 것도 있다. “3년을 버티면 월 200만원 매출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들밭 한가운데에 있는 서점은 이루기 어려워 보이는 목표치였다. 서점마을은 단체 관광버스도 받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머물며 생각하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이유에서다.현재 매출은 월 150만원까지 올라왔다. 반년 만에 목표의 4분의 3에
전북 군산에는 마음 돌보는 데 특화된 독립 서점이 있다. 월명동의 오래된 적산가옥에 자리 잡은 ‘심리서점 쓰담’이다. 심리상담사인 여성 책방지기와 그의 남편이 함께 운영하는 이곳은 ‘마음 점검소’에 가깝다.이곳의 ‘킬러콘텐츠’는 심리 검사와 맞춤형 책 큐레이션이다. 방문객은 모바일로 검사지를 받아 20분간 응답하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책방지기가 상담사로서 해석 편지를 써준다. 원하면 2층 공간에서 실제 상담도 한다. 상담은 사전 예약을 원칙으로 한다이곳의 책 큐레이션은 다소 느리다. 고민을 거듭해 책을 선정하기 때문이다. 문진표를 작성하면 책방지기 부부가 1주일가량 논의해 책을 고른다. 윤영민 책방지기는 “마음을 다루는 일인 만큼 가볍게 추천할 수는 없다”며 “가능한 한 직접 읽은 책을 중심으로 신중하게 고른다”고 말했다.전국의 시골 책방이 주로 활용하는 킬러콘텐츠는 ‘북토크’다. 서울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작가와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경남 남해 ‘아마도책방’에서는 이슬아 작가와의 북토크 행사가 열렸다. 남해가 고향인 이 작가가 ‘일일 책방지기’도 맡았다.북토크는 작가뿐만 아니라 출판사, 플랫폼(카카오브런치), 서점이 참여하는 협업 프로젝트로 열렸다. 책 내용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문화 활동을 이어가는 어려움과 의미, 출판 현장의 현실까지 폭넓은 대화가 오갔다. 박수진 책방지기는 “작가에게 책방을 자주 찾는 단골손님을 일일이 소개하기도 했다”며 “1년 치 에너지를 하루에 몽땅 충전한 느낌”이라고 했다.‘이색 서
뮤지컬 ‘겨울왕국’ 제작사가 성범죄 전과 논란이 불거진 황석희 번역가를 하차시키기로 했다.15일 클립서비스는 황 번역가를 ‘겨울왕국’ 제작 작업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과거 성범죄 전력이 뒤늦게 알려진 데 따른 조치다. 뮤지컬 ‘겨울왕국’은 오는 8월 한국 초연을 앞두고 있다.기존까지 황 번역가가 작업한 내용은 사용하되, 이후 작업은 담당 제작진이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어 가사는 음악감독이, 한국어 대본은 연출이 담당한다.지난달 30일 보도에 따르면 황 번역가는 2005년 2건의 강제추행치상, 2014년에 준유사강간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5년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 2014년에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과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황 번역가는 영화 ‘데드풀’, ‘스파이더맨’, ‘보헤미안 랩소디’ 등 다수의 할리우드 작품 번역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약 600편에 달하는 영화 번역에 참여했으며, 최근에는 ‘프로젝트 헤일메리’ 번역으로도 주목받았다. 특유의 재치 있는 번역과 입담으로 대중적 인지도도 높여 왔다.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요즘 출판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숫자는 민음사의 작년 실적이다. 매출 206억원, 영업이익 42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23.4%, 72.8% 증가했다. 민음사의 매출 대부분은 서적 판매에서 나온다. 최근 수년간 베스트셀러 시장을 주도해 온 한강 작가의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미스터리’라는 말까지 나온다. 출판 시장 전반이 위축된 상황에서 나온 성과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 ‘텍스트힙’ 이끈 출판사업계는 서적 판매량 급증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텍스트힙(Text Hip) 트렌드’에서 찾는다. 텍스트힙은 독서가 교양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취향으로 소비되는 흐름이다. 민음사는 이 흐름의 수혜자인 동시에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키운 출판사로 꼽힌다.가장 대표적인 수단이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다. 2019년 개설된 이 채널의 구독자 수는 2023년 4월 말 13만2000명, 2025년 3월 말 29만2000명을 기록한 뒤 최근 42만 명까지 돌파했다. 이 채널에서는 편집자들이 직접 출연해 책을 소개하고, 브이로그를 찍고, 작가를 인터뷰한다. 책 뒤에만 머물러 있던 편집자가 책의 소비를 적극적으로 이끄는 역할까지 맡은 것이다.출연자들은 책을 단순히 좋은 책이라고 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자기 말로 솔직하게 고백한다. 딱딱한 홍보 문구보다 더 파급력이 크다. 지난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결정 당시 진행되고 있던 라이브 공연에서의 편집자들의 깜짝 놀라는 반응(사진)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요즘 민음사TV에 출연하는 편집자들은 각종 출판 행사에서 줄을 서야 만날 수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실업자가 크게 늘고 공동체가 위협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라이브로 보는 경험은 재현할 수 없습니다.”‘빌리 엘리어트’ 영화와 오리지널 뮤지컬을 연출한 스티븐 달드리(사진)는 13일 서울 삼청동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라져가는 분야에 대한 보편적 공감이 작품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라며 1980년대 탄광촌 이야기지만 오늘날 AI 시대와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달드리는 국내 공연 개막에 맞춰 방한했다. 전날 프리뷰 공연과 리허설을 모두 지켜본 그는 “오랜만에 작품을 다시 보니 감정이 북받쳤다”며 “배우들의 연기는 환상적이었고 무대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빌리 역의 김승주에 대해 “이 역할은 마라톤을 뛰면서 햄릿을 연기하는 것과 같은데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빌리 엘리어트’는 2000년 영화로 시작해 2005년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뮤지컬은 토니상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10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흥행작으로 자리 잡았다. 달드리는 장수 비결로 ‘보편성’을 꼽았다.탄광 파업이라는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한 소년이 춤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찾고 공동체가 이를 지지하는 과정이 국경을 넘어 공감을 얻고 있다는 설명이다.작품의 뿌리에는 1980년대 영국 사회를 뒤흔든 변화가 있다. 당시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 시기 탄광과 제조업이 급격히 쇠퇴했고 관련 공동체는 큰 타격을 입었다. 달드리는 “젊은 시절 광부 마을에서 연극을 하며 그 변화를 직접 겪었다”며 “대처 정부는 노동자
‘권력 중독’의 모습은 곳곳에서 보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유명하다. 그는 작년 유럽 정상들과의 다자 회담에서 혼자 책상에 앉아 ‘선생님’처럼 행동하기도 했다.신간 <권력중독>에서 독일 심리학자 카르스텐 C. 셰르물리는 이 같은 현상을 심리학과 생물학의 언어로 풀어낸다. 권력을 쥐는 순간 대량의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고 강한 쾌감이 형성된다. 이는 단순한 기분 변화가 아니라 반복을 요구하는 경험으로 각인된다. 권력은 일종의 중독 물질처럼 작용하고, 상실의 순간에는 금단에 가까운 고통을 경험하게 한다.저자는 트럼프 대통령, 샘 올트면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분식회계로 파산한 에너지 기업 엔론 등 사례를 통해 권력이 어떤 모습을 띠는지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기후 위기 대응’이나 ‘공정한 경제 시스템’처럼 명분을 내세우는 움직임에도 권력을 통해 기분 좋은 자극을 느끼기 위한 욕심이 반영돼 있다고 한다.흥미로운 대목은 권력이 인지 구조 자체를 바꾼하는 분석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타인을 단순화하고 고정관념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권력 있는 나이 든 남성일수록 Z세대는 게으르다며 “우리 때는 더 열심히 일했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저자는 해법도 제시한다. 첫째, 권력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회의에서 자신의 발언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지, 타인의 말을 끊고 있지는 않는지 감지하는 게 출발점이다. 또 불편한 피드백이 가능한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권력은 주변을 침묵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라도 비판을 허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인문 도서의 강세가 두드려졌다. 신영준·고영성의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2위)을 비롯해 라미 카민스의 <이향인>(7위), 자청의 <완벽한 원시인>(8위) 등 총 3권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와 연계된 도서의 인기도 꾸준히 이어졌다. 앤디 위어의 원작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영화 특별판)>이 2주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왕과 사는 남자 각본집>도 9위에 자리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무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법>이 4위를 기록하며 상위권을 형성했다.최한종 기자
기자를 구독하려면
로그인하세요.
최한종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