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근로자에 유리… 불이익변경 아니다"
정년을 연장하면서 시행한 임금피크제는 근로자에게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다는 판시다. 지난 5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취지로 나온 대법원 판결이 정년연장형에는 적용될수 없다는 판단도 함께 나왔다.

대전고등법원 청주제2민사부(재판장 원익선)는 지난 7일 한국농어촌공사의 전현직 근로자 9명이 공사를 상대로 청구한 임금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항소를 기각했다.

공사는 과반수 노동조합과 합의를 통해 개정 고령자고용법 시행일인 2016년 1월 1월에 맞춰 정년을 기존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해당 기간 임금지급률을 90%, 70%, 60%로 감축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에 임금피크제 대상자인 근로자들은 지난해 임금피크제가 무효이므로 감액분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임금피크제 도입시 노조 동의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도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부와 공사의 부당한 개입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먼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 과반수나 과반수로 이뤄진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다.

법원은 "(기존) 정년인 58세에 1년간 지급받았을 임금 총액을 100%라고 보면, 임금피크제 하에서는 58세부터 60세까지 220%(90+70+60%)를 받게 되므로, 임금 삭감에 따른 불이익을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정년이 연장된 기간 동안 받을 수 있는 임금 총액을 고려하면 되레 소득이 늘어난 셈이기 때문에 불이익한 변경이 아니라는 취지다.

그밖에 노사가 임금피크 대상자에 대해 임금 감액에 비례한 근로시간 단축 규정을 신설한 점, 대상 근로자들을 보직 임용에서 제외하는 등 업무 강도를 덜어 준 점도 근거로 들었다.

이런 논리는 지난 5월 한국전력거래소 사건에서 나온 하급심 법리와 결을 같이 한다. 당시 서울남부지법은 "정년이 연장된 부분의 임금 삭감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변경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정년이 그대로인데 임금이 삭감되면 당연히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변경이지만, 정년이 연장된 경우라면 원래 정년대로였다면 주지 않아도 되는 임금을 추가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로 임금을 낮춰도 오히려 이익이라는 뜻이다. .

원고들은 "올해 5월 선고된 대법원 판결에서 제시한 적법 임금피크제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은 정년유지형에 관한 것이므로 이 사건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대법 판결 기준에 따라도 문제가 없다고도 봤다.

법원은 "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감액된 임금으로 신입 직원의 채용을 늘리고자 하는 등 정당한 목적이 있었다"며 "정년 연장 자체가 가장 중요한 대상조치에 해당하며,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에도 감액된 임금을 고려하여 노사가 근로시간 단축 등에 대하여 합의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사건을 담당한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판단할 때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구별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며 "임금피크제를 도입 내지 변경할 때 중점적으로 검토할 부분에 대해 참고할 만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