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은 노사관계 전반의 문제 아니다" 민주노총 정조준한 정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논란입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자금 이슈로 정국이 급랭했지만 해당 이슈는 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킬 7대 입법과제로 선정한 만큼 내달 초 법안심사가 시작되면 언제든 급부상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이런 가운데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작심한듯 보도자료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사실상 '입법 불가' 입장을 내놓고 있어 주목됩니다.

고용부는 지난 4일에 이어 21일에도 '손해배상 소송·가압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불과 2주 간격으로 같은 사안의 보도자료를 내는 것도 이색적이지만 정부가 노사 간 다툼이 있는 특정 이슈에 대해 이처럼 명확한 반대 메시지를 내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 4일 발표한 보도참고자료는 상대적으로 '일반론'이었습니다. 2009~2022년 8월 노조 등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총 151건, 청구금액은 2752억7000만원이었고 민주노총을 상대로 한 사건이 142건으로 전체 소송의 94%를 차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전체 소송 151건 중 대우조선해양 쌍용차 현대차 등 9개 기업이 전체 청구액의 80.9%를 차지한다고도 했습니다.

노란봉투법 입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민주노총을 겨냥한 듯한 내용이었지만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 전체를 아우르는 뉘앙스가 강했습니다. 이후 정부의 스탠스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 보도자료는 지난 21일 배포됐습니다. 고용부는 해당 자료에 대해 "판결이 선고된 바 있는 63건을 대상으로 선고 결과, 행위 양태별 법원의 판단 등을 상세히 분석한 결과"라며 해외사례 조사도 첨부했습니다.

내용은 크게 세 개의 줄기입니다. 우선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제기된 총 151건의 소송 가운데 민주노총을 상대로 제기된 사건이 전체 소송의 94%(151건 중 142건), 전체 청구액의 99.6%, 전체 인용액의 99.9%가 민주노총 대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건이 105건으로 전체소송의 69.5%에 달한다고 적시했습니다. "손배문제는 노사관계 전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고용부가 사실상 노란봉투법은 민주노총에 국한된 사안이라는 얘기를 우회적으로 한 것입니다.

판결을 분석한 결과와 관련해서는 손해발생의 가장 큰 원인은 '사업장 점거'라고 했습니다. 손해배상 청구원인의 49.2%가 사업장 점거에 의한 생산라인 중단 등이었고, 인용률은 90.3%로 전체 손배 청구 인용액(332.2억원)의 98.6%(327.5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점거 과정에서 폭행·상해가 수반된 경우가 71%라고도 부연했습니다. 또 법원은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청구액이 많다는 이유로 사용자가 권리를 남용했다고 보지 않는다고도 해석했습니다. 청구금액이 많다고 해서 회사가 오로지 근로자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가하려는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노란봉투법 관련 개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을 사실상 조목조목 반박한 것입니다.

민주노총 등이 국제노동기구(ILO) 권고 등 국제기준에 맞춰 사용자성 또는 근로자성을 확대하고, 쟁의행위에 따른 손배 청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해외사례를 들어 반대 메시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고용부의 해외사례 조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면책을 법률로 명시한 나라는 없다.
△대부분 국가는 폭력·파괴행위는 물론 사업장 점거도 위법하다고 본다.
△개인에 대해서만 법률로 손배 책임을 면책한 사례는 없다.
△손배 범위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입법례는 없다.

검찰 수사를 둘러싼 여야의 대치정국이 잦아들면 곧 입법의 시간이 올 전망입니다. 노란봉투법 입법의 향배는 여론에 좌우될 것이라는 게 여야 모두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민주노총의 주장을 받아든 거대 야당의 입법 드라이브에 정부와 여당이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주목됩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