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8억원어치 사놓고…절반도 못 쓰는 한전
한국전력이 송전탑 원격 관리 명목으로 8800만원짜리 수소드론 등 값비싼 드론을 대거 사들였지만, 조종 자격증을 갖춘 직원이 없어 절반 이상을 방치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경북 구미시갑)이 한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배선 설비 진단과 송전탑 관리를 위해 드론 101대를 구입했다. 최저 160만원대부터 수천만원대 드론을 구매하는 데 투입된 예산은 8억500만원. 이 가운데 52대가 올해 한 번도 날개를 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전은 지난해 개정된 드론 관련 법규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 법규에 따르면 드론 자격증이 없는 사람은 드론을 조종할 수 없다. 드론을 활용한 배선 설비 진단에 투입할 수 있는 한전 직원은 전국적으로 16명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3년간 창고에만 넣어뒀던 드론도 31대에 달했다. 자격증은 있지만 기종에 걸맞은 적정 자격증이 없어 사용하지 못한 드론도 20대나 됐다. 드론 자격증은 무게에 따라 1종부터 4종까지 나뉜다.

한전은 대당 8800만원짜리 고가 드론을 사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이 개발한 수소드론으로, 전기 배터리를 이용하는 일반 드론과 달리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해 최장 120분간 비행할 수 있다. 한전은 이 수소드론을 2년 전인 2020년 12월 구입해 2021년 한 차례도 쓰지 않고 창고에 보관했다. 올해 2분기부터 조금씩 활용하기 시작해 지난 8월까지 36번 투입됐다. 업계 관계자는 “드론을 활용한 송전탑 관리가 효율적인 건 맞지만 일반 드론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드론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교통안전공단이 관리하는 초경량비행장치무인멀티콥터 자격증(드론 자격증)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최대 이륙중량 250g이 넘는 드론을 조종할 때 자격증이 없으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한전 관계자는 “사람이 직접 확인하던 배전설비 진단을 대체하기 위해 드론을 구입했다”며 “지난해부터 관련 자격증 제도가 바뀌면서 드론 운용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전이 구입한 드론 101대 중 89대는 중국산이다. 중국산 드론은 고장이 잦고 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3300만원을 들여 구입한 중국산 드론은 16차례 비행 후 고장 나 사실상 방치됐다. 2018년 2850만원을 주고 구입한 드론 두 대도 고장으로 쓰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한 대는 3년 내내 수리 중인 상태로 보관돼 있다.

구 의원은 “불필요한 사업 정리와 장비 구입 최소화가 기업 재무건전성 확보의 최우선 과제”라며 “한전에는 전기료 인상보다 조직 내부의 자기반성이 절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