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용 반지하 금지, 추락 방지 맨홀 장치 도입, 대심도 터널 건설….’

시간당 150㎜에 가까운 기습폭우로 여덟 명이 목숨을 잃는 등 막대한 피해를 본 서울시가 새로운 수방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존에 수립한 정책부터 제대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10여 년간 수차례 침수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반짝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후 제대로 운영하지 않은 게 많다는 것이다.

10년째 제자리걸음인 투수 블록

다 바꾼다더니…물 스며드는 블록, 10%뿐
서울시가 2013년 내놓은 ‘투수 블록’이 대표적이다. 투수 블록은 비가 왔을 때 물이 빠져나가는 기능을 가진 보도블록을 말한다.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2013년 당시 서울시는 ‘물순환기본조례’를 제정해 앞으로 단일공사를 할 때는 불투수 포장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2010년 초반 강남과 광화문 등 서울 시내가 폭우로 물에 잠긴 데 따른 대책이었다.

하지만 대책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 전체 보도블록(1077만㎡) 중 투수 블록이 차지하는 비중은 11.04%인 119만㎡에 불과하다. 가장 큰 이유는 필요한 예산이 배정되지 않고 있어서다. 한 구역의 보도블록을 새롭게 교체하는 단일 공사를 하려면 보통 5억~6억원이 든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투수 블록의 ㎡당 시공 비용은 일반 블록에 비해 20~30% 정도 비싸다. 하지만 보도블록 예산은 오히려 줄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보도블록 관련 예산은 168억원으로 지난해(300억원)보다 감소했다. 코로나 지원금 등 복지예산이 늘면서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줄어서다. 올해 예산 168억원을 25개 자치구가 나눠 가져가면 한 자치구가 받는 예산은 6억7000만원 정도다. 단일 공사 한 건을 하고 나면 긴급보수를 할 돈도 없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투수 블록이 상당한 침수 예방 효과가 있는 만큼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투수 블록 밑에는 20㎝ 두께로 잡돌을 까는데, 잡돌들 사이의 공간에 ㎡당 약 60L의 빗물을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경영 한국빗물협회 회장은 “서울시 초기 계획대로 됐다면 서울 전체에서 투수 블록에서만 460만t의 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며 “이는 가로 100m, 세로 100m, 깊이 10m의 저수지 46개를 만드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했다. 그는 “배수관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수 블록은 배수로로 가는 물의 양을 줄여줘 저지대로 물이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버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침수 취약 1 대 1 돌봄서비스 ‘유명무실’

2014년 도입된 ‘돌봄서비스’도 유명무실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서비스는 침수 취약 가구와 공무원을 1 대 1로 매칭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돌봄서비스 가구는 2014년 9434곳에서 지난해 4170곳으로 반토막 났다. 전출입, 해지 요청, 시설관리 개선 등으로 줄어들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하지만 정작 침수가 될 만한 지역은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에 동작구와 관악구 반지하에서 숨진 시민들은 돌봄서비스 대상이 아니었다. 과거 침수 이력을 바탕으로 대상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긴급재난문자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여름철 풍수해 종합대책을 가동하며 도로를 통제할 때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도로전광표지판, 옥외전광판, 긴급재난문자 등을 통해 교통통제 상황, 우회 도로 등을 적극적으로 안내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침수 당시 교통통제 상황을 제대로 안내받지 못해 차량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컸다.

서울시는 “문제가 발생하면 긴급재난문자 등을 자동으로 보내는 시스템인데 동시다발적으로 통제가 발생하다 보니 누락된 경우가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는 빠지는 일이 없도록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