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10시께 찾은 서울 관악구 삼성동시장 입구 상황
9일 오전 10시께 찾은 서울 관악구 삼성동시장 입구 상황
9일 오전 10시께 찾은 서울 관악구의 삼성동시장. 손님맞이로 분주해야 할 이곳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물건을 내놓는 대신 흙탕물을 퍼내느라 바빴다. 전날부터 300㎜넘게 쏟아진 비에 이곳 재래시장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10미터 남짓한 시장 입구와 인접한 2차선 도로를 구분 짓는 경계선은 뒷산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버스와 차들은 시속 20㎞조차 내지 못하고 이곳 구간을 지나갔다.

흙탕물 범벅된 식자재…"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감도 안와"

시장 맨 입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오병헌 씨(68)는 족발, 보쌈 등 먹거리를 올려놓아야 할 선반에 조리도구를 널어놨다. 만 원 남짓한 단위로 포장한 족발·보쌈을 파는 오 씨의 가게 옆에는 임시로 버려놓은 식자재가 한 트럭 가까이 쌓여있었다. 지상 1층에 위치한 가게는 물론, 식자재와 각종 가게물건을 보관해놓던 30평 남짓의 지하실까지 물이 들어차 엉망진창이 된 탓이다. 오 씨는 “포장된 음식들도 사실상 갖다버리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 손해 본 돈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고 허탈해했다.
물난리로 피해를 입은 오병헌 씨의 가게 지하실. 오 씨는 "이 곳에 있던 식자재들 모두 물에 젖어 못쓰게 됐다"고 말했다.
물난리로 피해를 입은 오병헌 씨의 가게 지하실. 오 씨는 "이 곳에 있던 식자재들 모두 물에 젖어 못쓰게 됐다"고 말했다.
오 씨 가게 바로 옆에서 35평 규모의 밴드연습실을 운영하는 조요셉 씨(47)는 5~6명의 가족과 함께 연습실에 들어찬 흙탕물을 퍼내고 있었다. 조 씨의 가게로 들어가는 지하 계단의 양쪽 벽은 물을 머금은 벽지가 군데군데 뜯어져 있었다. 간밤에 내린 비로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물은 지하의 연습실로 흘러들어 이곳에 비치된 드럼, 색소폰 등 악기는 물론 앰프, 스피커까지 망쳐놨다. 총 5000만원이 넘는 악기들을 하룻밤 새 날렸다는 조 씨는 “그나마 사람이 다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한숨만 쉬고는 다시 양수기를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시장 안쪽 고지대에 위치해 침수를 피한 가게도 물난리를 빗겨나가지 못했다. 20평 규모의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이방남 씨(82)는 가게 앞에 늘어놨던 신발 200여 켤레가 비에 젖어 모두 안쪽으로 치웠다. 약국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가게 천장에서 물이 새 진열대에 높이 쌓아뒀던 약품들이 물에 젖어 못 쓰게 됐다. 김 씨는 “사진을 많이 남겨놔야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우선 새벽에 가게 상황을 찍어놨다”고 말했다.

앞에는 도림천, 뒤에는 재개발…'이중피해'

이곳이 유독 피해가 심했던 것은 ‘배산임수’ 지형에 위치해서다. 삼성동시장은 앞으로는 도림천을, 뒤로는 신림1주택재개발지역과 건우봉 두고 있다. 간밤에 내린 폭우가 뒷산에서 토사를 쓸고 내려오는 동시에 도림천이 범람하면서 시장은 앞뒤로 밀려오는 물난리를 맞았다.

상인들은 사정이 이런데도 구청과 주민센터에선 사태 파악은커녕 양수기 대여 등 도움조차 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한 상인은 “소방서와 구청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출동 가능한 인력이 없다고 답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수기라도 달라고 사정해 한 대를 받았지만 이마저도 고장 난 물건이었다”고 덧붙였다.

관악구청은 구청 직원은 물론 동 주민센터 직원들까지 총동원해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는 입장이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주민센터를 통해 양수기를 지원하는 등 최대한의 도움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피해를 줄인 것도, 피해를 복구하는 것도 이곳 상인들의 몫이었다. 관악소방서에서 의용소방대원으로 일했다는 박종진 씨(63)는 가게 앞 맨홀에서 물이 역류하자 새벽 2시경 위험을 무릅쓰고 맨홀뚜껑을 열었다. 박 씨와 함께 건물에 들어찬 물을 퍼내던 문변석 씨(56)는 두 눈이 충혈된 채 양수기를 지하로 연결하고 있었다. 문 씨는 “어젯밤 9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물을 퍼내고 있다”며 “이곳 상인들 대부분이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물을 퍼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