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밤 서울 중구 중림동 회사 근처에서 부서원들과 식사하고 자차로 이동했다. 밤 9시 40분께 지하철 5호선 영등포 시장역 인근에서 한 부서원을 내려준 뒤 귀가를 위해 신길동 인근을 지나 시흥대로로 접어들었다. 신대방 우성아파트에서 대림 성모병원까지 차량이 길게 정차돼있었다.

신호등이 몇번 바뀌었지만 차는 40여분 째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흥대로 일대에는 현재 한창 GTX 신안산선 공사중이라 도로가 좁아지는 구역이 있다. 그나마 차가 조금씩 빠지고 있다는 점에 '그러려니' 했다. 10시 30분이 돼 먼저 귀가한 아내에게 첫 전화를 걸었다. "비 때문인지 차가 많이 막혀, 좀 늦을 듯."
구로 디지털 단지역 300m 남기니 '수영장'이 앞에
100m가량을 더 이동해 대림사거리로 접어들었다. 차량이 거북이걸음을 하던 이유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차가 많은 게 아니었다. 물이 점차 차오르고 있었던 것. 차량들이 거대한 수로인지 도로인지 헷갈리는 물길을 앞두고 '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오른쪽 대림역 방향에서 물이 차올랐고, 왼쪽 신대방역 방향에서는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순간에도 물이 더 차오르는 듯 했다.
8일 밤 대림사거리 인근 상황. 물이 차오르는 도로로 버스가 회전하고 있다. 사진=김대훈 기자
8일 밤 대림사거리 인근 상황. 물이 차오르는 도로로 버스가 회전하고 있다. 사진=김대훈 기자
그나마 덩치가 큰 버스들은 '자신감 있게(?)' 물속으로 내달렸고, RV 차량들도 버스전용도로로 진입해 물길을 헤쳐나갔다. 인근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도로에 간간이 보이는 사람들도 물길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비가 쏟아지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애처롭게 든 우산은 이미 소용없어 보였다

앞선 몇몇 차량들이 앞으로 빠져나가고 정말 고민할 순간이 왔다. '갈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

버스전용차로 오른쪽 1차선이 그나마 지대가 높은 편이었다. 2,3,4 차선은 뻥 뚫려있었지만, 깊이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그나마 '고지대'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 역까지의 거리는 200m 남짓이었다.

'용기(?)'를 낸 앞차를 따라 버스전용차로 옆 1차선으로 차를 천천히 몰았다. 물이 바퀴에 '찰방찰방' 한 정도가 아니라 번호판을 뒤덮을 정도였다. 혹시 차가 멈추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간간이 마찰음이 들릴 뿐 차는 문제없이 빠져나갔다. 2차선으로 RV차량이 '쌩' 하고 지나가자 물보라가 일어 일순간 흠칫했다. 왼쪽 버스 전용차로와 1차선이 버스 탑승구간으로 구분돼있어 버스 때문에 생긴 물보라는 내 차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았다.(고 믿었다.)

마침내 구로 디지털단지역에 도착했다. 주변부에선 나름대로 지대가 높은 편이다. 시흥대로와 지하철 2호선 지상 구간이 만나는 다리 아래 구간에는 많은 차량이 비상등을 켜고 대피해 있었다. '귀가를 포기할까' 고민을 했지만 앞차를 따라 차를 더 몰았다.

고지(?)에서 내려서자 구로디지털 단지역 일대 먹자 골목에도 거대한 수영장이 형성돼있었다. 정류장에는 버스를 타고 귀가하려는 시민들이 홀딱 젖은 채 모여있었다. '긴급 유턴'을 하는 한 버스운전기사는 갑자기 차를 멈추고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채 차량의 왼쪽 바퀴 아래를 살폈다. 버스 범퍼는 종잇장처럼 구겨져있었다. 물길을 헤치고 운행하면서 도로 위에 있던 물체와 부딪혀 생긴 흔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앞선 RV 차량 후미에는 물기를 머금은 종이 박스가 찰싹 붙어 있었다.

시흥IC 까지의 또다른 고지에 도달만 하면 그나마 집까지는 '갈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흥IC 앞에 물로 가득찬 도로의 길이는 150m 가량. 앞선 침수 도로(?)보단 짧았지만, 깊이가 더 깊어보여 용기가 더 필요했다.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기자의 차량(중형차)보다 훨씬 크기가 작은 경차 한 대가 앞을 물길 속으로 내달렸다. '나도 별일 없겠지?' 라는 생각에 차를 몰았다. 버스가 만든 물보라를 헤쳐야 했지만, 차는 문제없이 빠져나왔다.
8일 밤 서초동 도로에 고립된 한 운전자의 허탈한 모습. SNS=캡쳐
8일 밤 서초동 도로에 고립된 한 운전자의 허탈한 모습. SNS=캡쳐
기자가 시흥동 집까지 도착한 시간은 11시 50분께. 평소 이 시간에 걸리는 시간인 40분의 두배가 넘는 1시간 50분이 걸린 셈이다. 무사히(?) 집에 도착해보니 강남역 일대는 물난리가 났다는 뉴스가 적지 않았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일대는 상습 침수구역으로 꼽혀 구청 등에서 수차례 우회수로를 만드는 등 수차례 정비를 했지만, 시간당 100㎜가 넘게 쏟아진 폭우 앞에선 이번에도 침수를 피하지 못했다.

'갈까 말까 고민'을 하던 한시간 전을 생각하며 침수된 도로 행동 요령 등을 살펴봤다. 침수 도로로 차량을 운행하는 건 '내 차를 침수차로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행정안전부는 "침수된 도로는 되도록 우회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평소에 다니던 길이라도 침수 정도를 도무지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로의 맨홀이 이탈하거나 솟아오르는 현상으로 차량이 망가질 가능성도 있다. 앞선 차량이 간다고 해서 '내 차도 괜찮겠지'하고 물길로 뛰어드는 건 만용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특히 도로의 경사가 급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유속'이 빠른 곳에선 차량이 일시에 미끄러지거나 휩쓸릴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승용차 기준 타이어 높이의 3분의 2 이상이 잠기기 전에 차량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라"고 안내한다. 기자는 운 좋게 이 기준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 덕에 '서초동 현자'와는 달리 간신히 차 침수 없이 귀가를 한 것이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