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의원 의료진, 소방관 진입 당시 환자 대피시키느라 분주
"의사자 지정해야" 목소리 높아…경찰, 병원 내부 CCTV 분석 중

경기 이천의 병원 건물 화재 현장에서 환자 곁을 지키다 숨진 현은경(50) 간호사를 의사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7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5일 오전 10시 17분 이천시 관고동 학산빌딩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접수한 소방당국은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진화에 나서는 한편, 33명의 환자가 치료받고 있던 투석 전문 병원 열린의원으로 진입했다.

이천 병원 건물 화재서 숨진 현은경 간호사 의사자 지정될까
발화장소인 3층의 스크린골프장에서 시작된 불로 인해 다량의 연기가 바로 위층인 4층으로 올라가 대규모 인명피해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소방대원들이 병원 안으로 들어갔을 당시에도 병원 의료진들은 고령의 환자들을 대피시키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걸을 수 있는 이들은 계단을 이용해 아래층으로 내려보내고, 일부는 옥상으로 대피시킨 뒤 구조를 요청하는 등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환자의 팔목에 연결된 투석기의 관을 가위로 자른 뒤 이들을 밖으로 빼내느라 눈코 뜰 새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환자들을 데리고 병원을 빠져나온 한 의료진은 연합뉴스와 만나 "누군가 '연기다'라고 했는데 정말 순식간에 연기가 차올랐다"며 "3층에서 연기가 올라왔는데, 특정 공간에만 연기가 차오른 게 아니라 전체에 다 차올라왔고, 곧 앞이 보이지를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천 병원 건물 화재서 숨진 현은경 간호사 의사자 지정될까
또 다른 의료진은 현씨와 관련한 질문에 "우리도 몰랐다.

환자들을 빼내고 나서 한참 있다가 누가 나왔는지 못 나왔는지를 살펴보다 보니 (현 간호사가) 없었다"라며 "그는 정말로 성실한 간호사였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장재구 이천소방서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소방대원 진입 당시 간호사들은 환자 옆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며 "충분히 대피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투석 환자를 위한 조처를 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찰은 CCTV 녹화 영상을 확보해 화재 당시 병원 내부 상황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화재로 인한 연기 확산 경로와 사망자 발생 경위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직 CCTV 내용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경찰은 당시 병원 안에 있던 의료진 13명을 대상으로도 필요할 경우 화재 당시 상황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간호사 등 의료진도 대부분 환자를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연기를 들이마시는 등 다쳐 현재 치료 중이거나 안정이 필요한 상태여서 조사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같이 화재 당시 병원 내 의료진들이 환자들 대피와 구조를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진술과 정황이 곳곳에서 나오면서 숨진 현 간호사를 의사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사자와 의상자 등 의사상자는 직무 외 행위로 위해(危害)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보건복지부는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통해 의사상자를 결정하는데, 이에 앞서 엄정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이천 병원 건물 화재서 숨진 현은경 간호사 의사자 지정될까
이번 화재 역시 당시의 상황을 담은 CCTV 영상 분석, 구조된 환자들의 진술 청취 등을 통해 현씨를 비롯한 의료진의 구호 활동을 확인한 후 의사상자 지정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과거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2018년 1월 밀양세종병원 화재 당시 환자들을 대피시키다 끝내 숨진 의료진이 의사자로 인정된 바 있다.

간호사였던 김점자(당시 49세) 씨와 간호조무사였던 김라희(당시 36세) 씨는 당시 1층 응급실 내부의 탕비실 천장 전기배선 발화로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알아차린 뒤 즉각 '불이야, 불이야'라고 외치고 병실을 돌아다니면서 환자들을 대피시켰다.

이어 거동이 불편한 환자 4명을 1층으로 빨리 대피시키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이동했지만,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엘리베이터 내에서 연기에 질식해 숨을 거뒀다.

이천 병원 건물 화재서 숨진 현은경 간호사 의사자 지정될까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SNS를 통해 "고인은 이천병원 화재 당시 투석환자들의 대피를 위해 각별한 헌신을 보여주셨고,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희생을 하셨다"며 "의사자 지정을 통한 국가적 예우는 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정부에 적극적으로 건의하여 고인의 의사자 지정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환자의 생명을 끝까지 지켰던 현 간호사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의사자로 인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12일까지 전국 16개 시도 지부별로 추모 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온라인에서는 "현은경 간호사의 의사자 지정은 당연하다", "환자의 목숨을 살리겠다고 제 목숨을 던진 현은경 간호사의 명복을 빈다", "이 시대의 영웅이다"라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