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의 건강식품 제조업체 A사는 지난달 말 파산을 신청했다. 코로나 이전엔 매년 40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최근 2년간 연 매출은 10억원 미만으로 쪼그라들었다. 대출을 받아 인건비와 회사 운영비를 감당하던 이 회사는 코로나 장기화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폐업한 뒤 파산 절차까지 밟게 됐다.

올해 법인 회생은 지난해보다 줄고, 파산을 신청한 기업은 더 늘었다. 코로나 충격에 경기침체, 물가상승 등의 여파로 사업주들의 사업 지속 의지가 꺾인 탓이라는 분석이다. 원자재값 폭등, 금리 인상 등의 충격파가 강도를 높이고 있는 만큼 하반기엔 파산에 내몰리는 기업이 폭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업들 ‘더 이상 못 버틴다’

"더는 못버텨"…파산 내몰리는 기업들 폭증
20일 법원통계일보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법인 회생 접수 건수는 482건이다. 지난해 상반기(628건)보다 23.2% 줄었다. 이는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3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반면 상반기 법인파산 접수 건수는 452건으로 지난해(428건)보다 늘어났다. 법인파산 접수 건수는 2020년 최고치를 기록한 뒤 지난해 다시 줄어들었으나 올해 증가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법인 회생이 줄어든 이유를 시중에 다양한 기업 지원 자금이 풀린 결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로 인한 경제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리가 낮은 정책자금을 운용했고, 기업들이 이를 통해 ‘생명 연장’을 해왔다는 것이다.

올해는 물가 급등과 경기침체가 심화하면서 회생 가능성까지 차단돼 파산으로 내몰리는 한계 기업이 늘었다. 한 도산 전문 변호사는 “지난해 파산 신청 건수가 줄어든 것은 상당수 한계기업이 2020년 시장에서 퇴출당했기 때문”이라며 “올해 다시 파산 신청이 늘어난 건 장기화한 경제 불황으로 회생조차 불가능한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회생 갔다가도 다시 ‘파산’

회생 접수 이후 파산 절차를 다시 밟는 사례도 증가 추세다. 태양광 부품 제조업체인 웅진에너지는 2019년 5월 회생 절차를 진행하던 중 “더 이상 회생 절차를 밟는 의미가 없다”며 지난달 스스로 회생절차 폐지 신청을 냈다. 지난 13일 서울회생법원이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함에 따라 웅진에너지는 파산 절차를 다시 밟게 될 전망이다.

2017년부터 방역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는 서울 성동구의 B 업체는 코로나가 확산하는 2019~2020년 여러 단체에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기부하는 등 착한 기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마스크 공급량이 전국적으로 급증하자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이들은 회생 신청을 냈지만, 서울회생법원은 최근 ‘지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크다’며 회생 절차를 폐지했다. 즉, 파산 절차를 밟으라는 것이다.

회생과 파산의 가장 큰 차이는 ‘재기 가능성’이다. 기업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의 가치가 클 때 회생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반대로 기업 운영보다 해당 업체가 보유한 부동산, 설비 등을 청산해 빚을 갚는 게 더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면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최복기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금리가 상승할수록 기업의 지속가치가 나오기 힘들다”며 “회생 절차를 밟는다고 해도 법원에서 청산하라고 판단하는 기업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