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전·현직 직원 약 1300명이 회사 측의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임금이 최대 40% 삭감되는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졌다. 사진은 판결이 나온 16일 서울 광화문 KT 본사. 김범준 기자
KT 전·현직 직원 약 1300명이 회사 측의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임금이 최대 40% 삭감되는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졌다. 사진은 판결이 나온 16일 서울 광화문 KT 본사. 김범준 기자
KT 임금 청구 소송에 대해 법조계와 노동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유는 지난달 대법원에서 임금피크제 판결을 내놓은 뒤 진행된 하급심 선고이기 때문이다. 앞서 대법원은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KT 전·현직 직원들이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주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로 연령 차별에 해당하고, 임금피크제가 적절한 합의를 거치지 않은 채 도입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1심 법원은 모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년연장으로 임금 더 받아…차별 아냐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가장 관심을 모은 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차별성 여부였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이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연구기관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대한 판결을 전체 기업에 확대 적용할 수는 없다”면서도 “정년연장형이라 해도 완전히 안심할 순 없다”는 해석을 내놨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에 대해 무효 판단을 한 첫 사례였기 때문에 다른 판결들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였다.
"정년 연장돼 임피제 근로자 임금 총액 늘어…KT 연령차별 아니다"
당시 대법원은 임금피크제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위해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임금 삭감 폭의 적절성 △임금 삭감에 따른 업무 강도 저감 △감액 재원의 사용처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KT 소송은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개별 사례라는 점과 직원들이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로 업무 강도나 양의 변화가 없었다”며 대법원 기준과 같은 이유로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집중됐다.

이번 소송을 심리한 재판부는 KT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업무 시간이나 업무 강도가 줄지 않은 점을 지적하지만, 정년연장 자체가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보상”이라고 했다.

또한 “임금피크제 도입 전에는 만 58세까지 일하고 연봉의 200%를 받아갔다면 지금은 만 60세까지 연봉 합계 300%를 받아가는 구조”라며 “결국 더 많은 임금 총액이 지급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근로자들은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는 별개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근로자 정년연장과 임금 체계 개편을 종합적으로 봐야지 분리할 순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KT가 당시 경영난을 겪으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도 주목했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합의한 2014년 당시 KT의 영업 손실은 7000억원대 수준이었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의 절박한 필요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총회 안 거치더라도 적법 합의

KT 소송의 또 다른 쟁점은 임금피크제가 적절한 절차에 따라 도입됐는지 여부였다. 원고 측은 “임금피크제가 조합원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아 노조법과 규약을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내부적 절차 위반이 있었다고 해도 노조위원장이 노조를 대표해 체결한 합의 효력을 대외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노조위원장이 노조원들의 절차적 권리를 침해하는 사건은 노조위원장이나 조합을 상대로 불법행위를 인정받을 순 있더라도, 그 책임을 회사에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또한 “노사합의를 체결한 위원장이 이후 다시 위원장으로 선출된 사정도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KT 노조위원장이 대표권을 남용했다는 원고들의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상욱 율촌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이 모든 임금피크제에 확대될 수 없음을 보여줬다”며 “임금피크제라는 사회적 합의를 쉽게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준 판결”이라고 말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