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공문을 믿고 계약했다가 피해를 본 기업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책임’을 일부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대우조선해양이 경남 하동군을 상대로 낸 분양대금 반환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은 2010년 하동군이 개발하던 갈사만 조선산업단지에 입주하기 위해 하동지구개발사업단(사업단)과 토지 분양 계약을 체결했다. 2012년 5월 하동지구개발사업단의 금융권 대출금 약 770억원에 대한 연대보증도 섰다.

이후 사업단은 계약상 토지분양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하동군에 이전하는 ‘분양자 지위 이전 합의서’를 하동군, 대우조선해양과 체결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합의에 따라 계약금 110억원을 하동군에 보냈다.

문제는 하동군의회의 의결 없이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분양자 지위 이전’은 예산 외 채무를 부담시키는 것으로, 하동군의회의 의결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합의 체결 전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을 것을 요청했으나, 담당 공무원은 ‘합의에 의결이 필요 없다’는 내용의 하동군수 명의의 공문을 작성해 송부했다. 그러나 해당 공문은 담당 공무원이 전결권자의 결재를 생략하고 대신 결재해 보낸 ‘허위 공문’이었다.

게다가 사업단은 조성 공사를 마치지 못하고 회생절차를 개시하는 바람에 대우조선해양은 계약 당시 연대보증한 770억원을 대신 갚았다.

하동군은 배상액을 줄여달라고 요청했으나 하급심 재판부는 대우조선해양에 그럴 만한 과실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동군 담당자가 합의서를 체결할 때 허위 공문서를 이용했다는 점도 참작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손해배상액 중 일부는 감액해줘야 하며, 그 금액을 하급심에서 결정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770억원 및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인정된다”면서도 “의회 의결 없이 체결된 합의가 무효임을 몰랐던 것에 대해 부주의가 인정된다”며 하동군의 책임을 일부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