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기간에도 '노동이 사라진 대선'이라는 말이 많았는데 국정과제를 봐도 노동정책 방향을 읽을 수가 없네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갈등은 빠른 성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성장을 위한 개혁 방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선 공약은 물론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에도 이렇다할 노동정책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새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이 안갯속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주52시간제와 최저임금의 유연한 적용 등에 대해 몇 차례 언급한 적은 있지만 대선 이후 이렇다 할 메시지는 내지 않고 있습니다. 인수위나 여당인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들도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런 탓에 지난 3일 인수위가 발표한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노동계와 경영계의 관심이 컸습니다. 하지만 '약속10.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라는 타이틀 아래 제시된 7가지 노동관련 국정과제 내용은 그야말로 '맹탕'이었습니다. 산업재해 예방을 강화하고 공정한 노사관계를 구축하며, 노사협력을 통한 상생의 노동시장 구축하겠다는 등 선언적인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구체적이라 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 관계법령 정비 등은 이미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내용인데다 고용보험 적용대상 확대 등은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의 연장선입니다. 특히 급격한 고령화와 산업구조 변화와 인구감소에 따른 정년연장 등 정책의 밑그림도 전혀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동계와 경영계는 제각각 비판과 요구사항을 내놓으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새 정부 출범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의 국정과제는 노동자와 민중 진영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반노동 정책"이라며 "오는 7월 2일 노동자대회를 열고 비정규직 문제, 차별없는 노동권, 질 좋은 일자리 문제, 최저임금 문제를 정부에 요구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날 경제단체들도 움직였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각각 250곳씩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새 정부의 최우선 규제개혁 추진과제는 노동규제"라며 노동개혁을 주문했습니다.

역대 여느 정부와 달리 새 정부의 노동공약 부재와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우선 속도조절론입니다. 노사정 대타협과 양대 지침 등 무리한 속도전으로 노동개혁을 실패했던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겠다는 얘기입니다. 정권은 되찾아왔지만 국회는 여전히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리 노동계와 야당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두 번째는 '노동철학의 부재'가 꼽힙니다. 노사관계라는 특수한 메카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다보니 그저 정부가 정책을 내놓고 추진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배경에는 윤 대통령을 포함해 주요 요직을 검찰 출신이 차지함에 따라 노동계를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잘못하면 처벌하면 된다'는 검찰 특유의 인식도 한몫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