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자치도 '흔들'…"소수자 학생 단체 위축"
캠퍼스의 봄은 아직…코로나 학번 "해본 것도 없이 2년이 훌쩍"
"어문계열 전공이라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경험이 중요한데 하나도 못 했어요.

이제 3학년이라 지금 가기엔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동기들과 놀면서 추억을 남긴 것도 아니라 허무하네요.

" (한국외대 20학번 박지현 씨)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여 만에 전면 해제되면서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고 있지만, 대학가에는 올해도 '황량한 봄'의 기운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코로나 학번'으로 불리는 20학번 대학생들은 별다른 성취 없이 학교생활의 절반 이상이 지나가 버렸다는 아쉬움과 막막함을 토로했다.

2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20학번 정성민 씨는 "그간 사이버 대학 생활이 고등학교의 연장선처럼 느껴졌고, 대학교에 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며 "코로나19로 동아리 활동과 교류 프로그램도 모두 취소돼 스펙을 쌓기 힘든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또 고학년이라 들어야 할 강의가 많아 외부활동을 병행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친구들과 만나면 취업 걱정이 많고, 휴학해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고려대 20학번 이현민 씨는 "대학 생활의 절반을 코로나 시국에서 보냈더니 대면 수업 등 캠퍼스 분위기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며 "1·2학년 때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는데 당시 학교 행사가 거의 없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게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군 휴학 등으로 학교를 떠났다가 돌아온 복학생들도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군 제대 후 지난해 9월 복학했다는 고려대생 박건영(22) 씨는 "동아리 등을 통해 후배들과 만나면서 학교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데, 작년에는 그런 만남이 불가능했다"며 "이제 취업 준비도 해야 해 학교생활보다 스펙 활동에 좀 더 집중해야 할 거 같다"고 했다.

1년간 휴학했던 성균관대 한신(25) 씨는 "예전에는 학교 행사가 있으면 홍보도 잘 되고 참여율도 높았는데, 복학하니 학교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며 "바로 대학 문화가 회복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캠퍼스의 봄은 아직…코로나 학번 "해본 것도 없이 2년이 훌쩍"
코로나 시대는 특정 학번뿐 아니라 총학생회를 필두로 한 전반적인 학생 자치에도 먹구름을 드리웠다.

2000년대 초까지 '학생자치의 꽃'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총학생회는 2010년대에 이르러 운동권 문화의 쇠락과 함께 위축됐지만, 학생 복지와 소수자 인권 보장 등으로 의제를 변경하면서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020년 이후 학기가 비대면으로 본격적으로 전환되면서 학교 현장과 학생들의 생활 공간이 분리되자 급격히 힘을 잃었다.

연세대는 지난해 11월 재투표까지 두 차례 선거를 치렀으나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했고 이달 12∼14일 진행한 선거 역시 무산됐다.

중앙대도 이달 투표율 미달로 선거가 무산돼 중앙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 중이고, 이화여대 역시 지난달 총학생회장 후보자가 나오지 않아 2년 연속 공석 상태다.

서강대의 경우 이달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단 후보자 등록과 선출마저 무산됐으나 최근 가까스로 대책위를 꾸렸다.

서울대는 2년 4개월간 총학생회장 자리가 공석이었다가 여섯 번의 선거 끝에 이달 초 총학생회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

총학생회의 부재는 다른 학생 기구의 활동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소수자 학생들이 구심점을 잃으면서 목소리를 낼 창구가 줄어들고 있다.

한양대 총학생회 산하 중앙특별위원회로 활동했던 성소수자인권위원회는 올해 1학기 인준을 받지 못해 활동이 중단됐다.

2014년 9월 출범한 이 단체는 2020년 1·2학기에도 인준을 받지 못하는 등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았다.

이 단체 위원장을 지낸 A씨는 "코로나19로 전학대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다 보니 성소위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며 "학내 성 소수자들이 소통 창구가 사라진 것에 대한 박탈감을 느껴 학교생활 전반에서 목소리가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중앙대 총여학생회의 후신 격인 성평등위원회가 학생 대표자로 구성된 확대운영위원회의 투표 끝에 폐지되기도 했다.

캠퍼스의 봄은 아직…코로나 학번 "해본 것도 없이 2년이 훌쩍"
이민지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은 "대면 행사를 진행할 여건은 마련됐는데, 정작 지금 학생회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대면 행사 경험이 없다"며 "현재 학생회 구성원 대부분이 20·21 학번이라 앞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고 했다.

(홍유담 이승연 설하은 안정훈 오지은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