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갑상샘암, 교수들 도움으로 극복…"가족 재회 기다려"
모국 쿠데타에도…시련 딛고 일어선 미얀마 이대생 자매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유린에인(23·유린)씨는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패션디자인전공 4학년(18학번)이다.

집을 떠나 먼 땅에 왔지만 외롭지는 않다.

함께 자취하는 여동생 참몬카(21)씨가 같은 학교 디자인학부 애니메이션전공 3학년(20학번)에 다니는 덕분이다.

둘의 큰언니인 푸우 미엣 뚜에(25)씨도 학교 선배다.

그는 둘째 유린씨와 같은 패션디자인전공 16학번으로 입학해 2020년 졸업한 뒤 먼저 귀국했다.

학업을 마치고 고향 땅에 돌아가 큰언니와 부모님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자매에게 지난해 모국에서 쿠데타라는 시련이 닥쳤지만, 학교 구성원들의 도움으로 이겨내고 있다고 한다.

8일 캠퍼스에서 만난 자매는 "미얀마 사태에 마음을 모아 준 한국 분들께 감사하다"며 연방 고마움을 표했다.

세 자매 중 먼저 큰언니가 2014년 한국에 건너가 입학을 준비했다.

모두 어린 시절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지만 미얀마에는 패션 관련 전공 과정이 없었고, 외국 중에서도 한국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고 한다.

유린씨는 "패션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는 여러 대학 중 가장 창의적인 학사 과정을 제공하는 이대에 끌려 언니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며 "나도 언니가 입학한 해에 뒤따라왔다"고 말했다.

모국 쿠데타에도…시련 딛고 일어선 미얀마 이대생 자매
동생 참몬카씨도 두 언니를 따라 같은 학교를 택했다.

원래 실내디자인을 공부하려다가 더 적성에 맞는 애니메이션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한국 생활이 수년째 되자 언론 인터뷰가 가능할 정도로 한국어도 능숙해졌다.

참몬카씨는 한국어 능력시험(TOPIK) 최고 등급(6급)까지 취득했다.

유린씨는 "미얀마에서도 알바를 한 적이 없었는데 용기를 내 주말 아침에 홍대 근처 편의점에서 일했다"며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 사람을 대하는 게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첫날, 고국에서 예상치 못했던 쿠데타 소식이 들려왔다.

참몬카씨는 "미얀마에서 인터넷 접속이 끊겨 가족 소식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되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고 떠올렸다.

끊긴 연락은 작년 4월이 지나서야 다시 이어졌다고 한다.

유린씨도 당시를 무거운 마음으로 회고했다.

"지난 1년간 저희 마음을 채운 건 죄책감이었어요.

친구, 친척, 동포가 저항 시위에 나가 죽임을 당하고 고생하는 동안 평화로운 타지에서 공부만 하며 사는 게 미안했어요.

"
그는 "귀국하면 언니와 함께 패션 브랜드를 창업할 생각이었는데, 코로나에 쿠데타까지 겹친 미얀마에서 지금 패션과 창업은 모두 사치가 됐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미얀마 출입국이 사실상 불가능해졌지만, 자매는 아낀 생활비를 모아 군부에 맞서는 시민방위군(PDF) 등에 후원하며 작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지난해 9월 참몬카씨가 청천벽력 같은 갑상샘암 진단을 받기도 했다.

다행히 학교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동생의 사연을 들은 유린씨의 학과 동기가 학교에 이 사실을 알렸고, 주보림·박선희·강애란 교수 등이 모금 등을 통해 치료와 수술비를 지원하는 한편 각종 장학금을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초 이대서울병원에서 무사히 수술을 마친 뒤 현재는 거의 완치된 상태다.

의연하게 병을 이겨낸 참몬카씨는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았다.

"알고 보니 교수님들도 모두 해외에서 유학한 적이 있어 저희의 심정을 잘 이해해 주셨다고 해요.

한국에서 경험한 가장 소중한 도움이었어요.

"
자매의 가장 큰 바람은 2년 넘게 못 본 큰언니와 부모님 등 가족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것이다.

유린씨는 "언젠간 민주화가 이뤄질 것을 믿는다"며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모국 쿠데타에도…시련 딛고 일어선 미얀마 이대생 자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