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사진)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2세.

하이팅크가 속한 공연기획사 아스코나스홀트는 21일 그가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잠들었다고 21일 발표했다.

192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하이팅크는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1954년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니에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지휘자로 명성을 쌓던 그에게 1956년 기회가 주어졌다. 세계 3대 명문악단 중 하나인 로열콘세르트허바우오케스트라(RCO)가 그에게 객원지휘를 맡긴 것. 그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요청을 거절했지만 이내 RCO와 함께 첫 무대를 꾸몄다.

이후 RCO의 정규 객원지휘자로 활동하던 그는 1961년 공동 수석지휘자로 승급했다. 이어 2년 뒤 유일한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88년 퇴임할 때까지는 그는 25년동안 RCO를 이끌며 숱한 명반을 남겼다. 베토벤, 브람스, 슈만 등 독일 작곡가들의 교향곡을 비롯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도 소화해냈다. 유럽 클래식 평단에서는 그가 독일·오스트리아 문화의 정수를 성대한 레퍼토리로 옮겨낸 지휘자라고 평가했다.

1988년 RCO 지휘석에서 물러나서도 명문악단이 앞다퉈 그를 찾았다.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상임지휘자로 2002년 임명됐고, 미국 시카고 심포니에서도 2006년 그를 상임지휘자로 추대했다.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선 2019년 그간 공로를 인정해 그에게 명예 회원 자격을 수여했다. 이때 그는 연단에서 65년간의 음악활동을 끝맺는다고 은퇴선언을 했다. 그는 은퇴 직전까지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450여개의 음반을 내왔다.

고인은 교향곡뿐 아니라 오페라 지휘에도 능한 음악가였다. 1972년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인 글라이드본 축제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선보였고, 1977년부터 12년동안 영국 글린데본 오페라의 음악감독을 겸임했다. 1987년부터 2002년까지는 로열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일했다. 코벤트가든에서도 음악감독을 역임했다.

고인은 명성을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지휘자였다. 1967년 타임지에서는 그를 두고 "숲을 거닐며 새를 관찰하는 조용한 사람"이라며 "오만함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지휘계에서 돋보이는 음악가"라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즈에서도 그를 두고 "왜 하이팅크는 슈퍼스타처럼 행동하지 않는가"라고 쓰기도 했다. 2015년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았을 때도 하이팅크의 헌신과 성실함이 빛난 덕이라고 음악가들이 입을 모았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