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결의요건을 지키지 않은 건물관리규약도 건물 소유자들이 오랜 기간 유효하다고 인식해 따랐다면 이에 근거한 조치를 불법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집합건물법이 정한 결의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건 인정하지만 다른 빌딩 소유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규약도 유효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한 조지를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K빌딩운영위원회 측이 K빌딩 지하 헬스장 사업자 A씨 등을 상대로 낸 용역비 지급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A씨 등은 2008년부터 2013년 1월까지 K빌딩 지하에서 사우나와 헬스장을 운영하면서 관리비 7300여만원을 내지 않았다. 이에 K빌딩운영위는 A씨 측에 관리비 납부를 요청했다. A씨 측이 응하지 않자 9차례 내용증명을 보내며 “관리비를 내지 않으면 단전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A씨 측이 관리비를 내지 않자 K빌딩운영위는 ‘관리비 미납 점포에 단전을 할 수 있다’는 관리규약을 근거로 A씨 측 점포에 전기 공급을 중단했다.

그러자 A씨 측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K빌딩운영위가 효력이 없는 관리 규약을 근거로 전기를 끊었다고 주장했다.

1·2심은 관리규약을 근거로 한 K빌딩운영위의 조치는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며 K빌딩운영위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관리규약 제·개정 당시 집합건물법이 정한 결의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단전의 근거가 된 관리규약이 무효라는 A씨 측 주장은 인정했다. 집합건물법 29조 1항은 빌딩 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찬성 등을 조건으로 규약을 설정·변경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다른 빌딩 소유자들이 관리규약 제정 이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규약이 유효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이 규약에 근거한 단전 조치는 불법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 측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관리규약이 무효라고 하더라도 단전 조치가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