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옮길 곳을 찾지 못해 올 12월 폐쇄를 앞둔 서울 수서동 강남구청소년쉼터. /쉼터 제공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옮길 곳을 찾지 못해 올 12월 폐쇄를 앞둔 서울 수서동 강남구청소년쉼터. /쉼터 제공
1998년부터 24년간 운영됐던 서울 강남구청소년쉼터가 올 12월 31일 문을 닫는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전셋방을 구하지 못해 폐쇄에 이르게 됐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사회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취약계층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에 사회 안전망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9억원으론 감당 안 돼”

8일 강남구청소년쉼터에 따르면 이 시설은 내년부터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 이곳을 설립한 강남구는 최근 쉼터 운영진에 ‘시설 폐쇄’를 통보했다. 해당 시설에 책정된 전세 보증금 예산 9억원으로는 강남구 내 165.3㎡ 이상 공간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강남구 측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전세 보증금 예산을 늘려 시설을 유지하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마땅한 매물을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쉼터는 가정 학대나 불화를 피해 집을 나온 청소년 등이 주로 이용하는 사회복지시설이다. 24년간 명맥을 이어오던 사회복지시설을 부동산 가격 폭등 여파로 폐쇄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쉼터 측은 “예산에 맞춰 공간 규모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복지지원법 시행령상 청소년쉼터 이용 정원 15명에 필요한 공간 규모는 최소 165.3㎡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성권 사회복지사는 “시설 폐쇄만큼은 막아보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9억원으로는 165.3㎡짜리 매물을 구할 수 없었다”며 “빌라나 상가 대부분 15억원을 훌쩍 넘고 아파트는 20억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2012년까지만 해도 강남구청소년쉼터는 전세 보증금 8억원에 2층짜리 단독주택에 거처를 두고 있었다. 이 복지사는 “강남구에서 시세를 더 잘 알 텐데 10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해 예산을 책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강남구가 대책 없이 손놓고 있다가 취약계층 지원을 포기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쉼터 측은 “서울시와 강남구 공공청사라도 이용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남구는 이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청소년쉼터를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청소년쉼터가 들어서는 것을 기피하는 지역 주민도 많아 어쩔 수 없다”며 “서울엔 총 17개 청소년쉼터가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을 이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밀려나는 사회복지시설

요즘 치솟은 부동산 가격에 운영상 어려움을 겪는 사회복지시설은 한두 곳이 아니다. 서울 성동·강동·동대문구의 사회복지시설도 대부분 임차료 상승에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동대문구의 한 지역아동센터는 올 상반기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꼭대기로 이전했다. 월세가 밀려 허덕이다 임차료가 한 푼이라도 싼 곳을 찾은 것이다. 성동구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이수경 센터장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센터가 있는 성수동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며 임차료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건물주 배려로 시세보다 저렴한 보증금 3000만원, 월세 60만원에 공간을 쓰고 있지만, 당장 내년이 걱정이다. 강동구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지하·반지하는 안 되고, 반경에 노래방 등 유해시설이 없어야 하는 등 아동복지법 기준을 맞추면서 임차료가 싼 매물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 사회복지사는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 영향으로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가 타격을 받는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이 상황이 지속되면 사회복지시설 대부분이 더 열악한 공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 사업부장은 “사회복지시설이 전셋값 지원을 못 받고 문까지 닫는 것은 사회 안전망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라며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고립, 불안 등을 겪는 취약계층이 더 위기로 내몰려 각종 부작용을 낳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지자체 시스템 필요

지방자치단체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사회복지시설을 폐쇄하는 것은 사회적 책무를 피하는 것이란 지적도 많다. 이를 해결하려면 “궁극적으로 지자체나 시설이 직접 부동산을 소유하는 게 가장 이상적”(임재만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이라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재정 부담으로 관련 예산을 늘릴 수 없다면 사회복지시설에 임차료를 낮춰주는 건물주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법도 대안으로 꼽힌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사회복지시설에 공간을 임대하는 건물주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고민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최예린/정지은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