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들이 국가의 잘못으로 입은 피해를 배상해 달라며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스스로 권리를 지키려는 국민 의식이 갈수록 강해지면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건수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가 상대로 소송, 4년 새 40% 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5부는 1998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유족에게 국가가 1억3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2일 판결했다. “경찰이 섣불리 교통사고로 판단해 초동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피해자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경찰이 현장조사와 증거수집을 하지 않고 증거물 감정을 지연시키는 등 극히 부실하게 초동수사를 했다”며 “이는 현저히 불합리하게 경찰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대생 정모양은 1998년 10월 학교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다 고속도로에서 덤프트럭에 치인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는데, 2013년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정양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성매매 혐의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K씨의 DNA가 일치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K씨는 공소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고 추방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국가배상 소송은 총 1419건이다. 2016년 1030건에서 2017년 1109건, 2018년 1321건, 2019년 1373건으로 최근 4년 새 37.8% 늘었다. 국가배상 소송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억울한 옥살이를 배상해 달라”는 소송이다. 마약 사범 누명을 쓰고 형사처벌받은 60대가 국가와 담당 경찰관을 상대로 지난달 30억원대 소송을 낸 게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소송이 늘어난 게 특징이다. 집단감염이 일어난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재소자 관리 책임을 물어 제기한 소송, 자영업자들이 영업제한 조치에 반발해 낸 소송 등이 있다.

소송 건수는 불어나고 있지만, 실제로 배상받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국가의 책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대부분 정부 쪽에 있어 개인(원고)이 인과관계와 피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재판부도 문서제출명령에 소극적이란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배상 소송에서 피고(대한민국)가 완전 패소한 사건은 57건에 머물렀다. 국가가 소송에서 져 물게 된 액수는 지난해 625억원(지급 완료 금액 기준)이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