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연계소문]
연(예)계 소문과 이슈 집중 분석

뜨거운 감자된 알페스·딥페이크
온라인상에서 남녀 갈등으로 비화
"문제의 본질 희석하려는 시도 경계해야"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여자들도 남자들이랑 똑같이 처벌받아야 한다."
"알페스는 성범죄랑 다른데 머리채 잡는 거 봐라."
"딥페이크는 안 되고 알페스는 된다? 내로남불"
"남녀가 아닌 성범죄자와 일반인의 차이지."
"그래서 알페스가 뭐고, 딥페이크가 뭔데요?"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는 혼돈 그 자체였다.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에 대한 성 착취 논란이 일기 시작하더니 이내 알페스가 등장했다. 이어 딥페이크가 꼬리를 물었고, 급기야 n번방 사건까지 논의의 장에 끼어들었다. 긴 논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문제의 본질은 희석되고 둘로 쪼개져 싸우는 모습만 남는다. 건전한 논의는 어디로 가고, 왜 또 남녀 갈등이 부각된 것일까.

알페스는 'Real Person Slash'의 약자인 RPS를 한국어로 빠르게 읽은 말로, 실존 인물을 커플처럼 엮어낸 창작물을 뜻한다. 팬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대상으로 로맨스 관계를 형성해 스토리를 창작해내는 팬픽의 한 갈래다.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내용은 완전한 허구이며, 대부분 동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다.

팬픽은 H.O.T., 젝스키스 등이 활동하던 아이돌 1세대 시절부터 팬덤 내에서 즐겨오던 현상 중 하나다.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 아이돌 멤버와의 유사 연애 느낌을 만들거나 멤버 간 동성애 코드를 형성하는 식이다. 그간 소속사나 연예인 역시 익히 알고 있는, 일종의 팬덤 문화로 여겨져왔다. 2006년 SM엔터테인먼트는 팬픽 공모전을 여는 등 마케팅의 일환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최근 문제가 된 것은 알페스의 수위다. 단순한 BL(Boys Love)을 넘어 자극적인 표현이나 지나친 성적 묘사가 담긴다는 지적이었다. 일부 미성년 아이돌 멤버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문제시됐다. 모든 알페스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성행위가 과하게 표현된 것들이 SNS나 포스타입에서 공개됐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팬덤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엔터 업계에서는 이를 제지하고 나서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멤버 간 '케미'를 강조하는 문화가 오랜 시간 지속되어왔고, 그간 문제적 사안으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 또 알페스가 실존 인물의 이름을 차용하나 허구의 이야기라는 점, 직접적인 피해 사실 등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칼을 빼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단, 업계 역시 지나친 성적 표현의 사용, 미성년자에게도 쉽게 노출되는 환경 등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논의로 발전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사안들이 건전한 논의를 거쳐 개선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알페스가 문제적 행동으로 '소환'된 과정에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스무 살 여성 대학생으로 설정된 AI 챗봇 '이루다'의 성 착취 논란 이후 알페스가 공론화됐기 시작했고, 이어 딥페이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딥페이크는 AI를 이용해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영상에 합성하는 기술로, 다수의 여성 연예인들이 피해를 본 사례가 있다.

알페스, 딥페이크의 대상은 남녀가 구분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어느새 젠더 프레임 아래 남녀가 양분화돼 진영을 가르며 싸우는 상황이 연출됐다. 악독했던 성 착취 범죄였던 텔레그램 'n번방'과도 연결 짓고 있다. 이들을 같은 선상에 두고 저울질하다 난데없이 상황은 남녀 갈등으로 비화했다.

이에 전문가는 남녀 갈등으로 인해 본질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각 문제의 흐름을 명확하게 진단해야 한다는 것.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한경닷컴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혀 남녀 갈등의 문제가 아닌데 '너네도 잘못한 게 있는데 왜 우리한테만 그러냐'고 말하고 싶은 이들이 있는 거다.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단순히 성별이 나뉘어 싸우는 것으로 보일 소지가 있다"며 "알페스, 딥페이크를 같은 선상에 올리는 것은 결국 문제의 본질을 희석하려는 거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는 권력 차이의 구조적 문제를 배제한 채 의미를 왜곡하고 물타기 하면서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공적기관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법과 교육을 만들어 확산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잘 받아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서로 평등하게 갈 수 있도록 교육과 법 제도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밝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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