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보는 균형잡힌 시각 필요
국가가 연구개발 주도권 쥐면
기업들 도전 않는 '좀비기업' 전락
최양희 서울대 AI위원장 "AI 마스터플랜 논의할 싱크탱크 꾸려야"

“한국의 인공지능(AI) ‘마스터플랜’을 논할 수 있는 싱크탱크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한국도 헤리티지재단 같은 조언자가 필요합니다.”

최양희 서울대 AI위원회 위원장(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사진)은 지난 1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AI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두뇌집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AI위원회는 공학·의료·인문·사회·경영·법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와 외부 전문가 18명으로 구성된 단체로, 서울대의 ‘AI 마스터플랜’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 최 위원장은 2017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복직한 뒤 작년 5월부터 AI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 위원장은 정부 출연기관보다 민간 싱크탱크가 전문적으로 AI 발전계획의 토대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AI 생태계’를 종합적으로 바라보려면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한데 정부·기업에 치중된 연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뛰어난 연구기관이지만 정부 영향력이 결국 이들 기관을 좌우하게 된다”며 “특정 집단에 얽매이지 않는 포럼이 중심이 돼 싱크탱크를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국가가 AI 연구개발의 주도권을 쥐는 것 역시 경계했다. 특히 상업성이 높은 응용 분야에서 정부 과제가 남발되면 기업이 스스로 도전하지 않고 정부 과제에만 의존하는 ‘좀비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한국처럼 아직 AI 생태계가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는 기업의 자생력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의 AI정책은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아쉽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AI 인재를 빠르게 키워내려면 중·고교 과정에 컴퓨터과학 교육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초등 5~6학년에게 코딩을 가르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AI 인재를 양성하는 데 팔을 걷어붙인 해외 국가와 비교하면 크게 뒤처진다는 것이다. 일본은 2025년부터 ‘정보’ 과목을 정식 대입과목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영국은 2014년부터 컴퓨팅 과목을 5~16세 학생의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수업하기 시작했다. 최 위원장은 “지구과학, 화학처럼 컴퓨터과학도 이제 기초 학문과목으로 봐야 한다”며 “수능 과목에까지 도입된다면 고교생 때부터 우수한 AI인재로 성장하는 바탕을 다질 수 있다”고 했다.

미래 인재뿐만 아니라 현재 사업인력의 ‘재교육’도 시급하다는 게 최 위원장의 진단이다. 한영EY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중견·중소기업 중 97%가 5년 내 AI 기술 도입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런 기업 중 다수가 어떤 분야에 AI를 도입할지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를 위해 대학이 앞장서 중소·중견기업의 ‘AI 컨설팅’과 ‘AI 재교육’을 도맡아야 한다는 게 최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국내 약 370만 개 중소기업 중 10%가 AI를 도입하기 위해 인력 두세 명을 재교육한다고 해도 최소 100만 명을 새로 교육해야 한다”며 “단순한 코딩 가르치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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