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와 9000억원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벌이고 있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수사 기록을 요청했지만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기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향후 검찰이 이 부회장을 기소하면 관련 ISD에서 수사 기록이 재판에 사용돼 한국정부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 홈페이지에 올라온 ‘엘리엇-한국 ISD 절차명령 14호’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 6월 12일 한국 법무부에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서 등 7개 문서 제출을 요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계획안, ‘국정농단 의혹’ 관련 파기환송심 재판장인 정준영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검찰의 기피 신청 이유서 등도 포함됐다.

하지만 ISD 판정부는 수사 자료 제출은 피의사실공표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무부 측 논리를 받아들여 엘리엇의 요구를 6월 24일 기각했다. 엘리엇은 과거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 엘리엇이 주식을 보유한 삼성물산 측에 불리한 합병 비율이 산정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향후 이 부회장이 기소된다면 피의사실공표 시비가 사라져 법무부가 수사 자료를 제출해야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엘리엇이 이 부회장의 수사 기록을 재차 요청한 뒤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 그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 국제중재업계 관계자는 “ISD 판정부가 문서 제출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수사 기록이 ISD에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될 수 있다는 게 엘리엇 측 입장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집의 합병에 대한 엘리엇의 주장은 이 부회장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논리와 비슷하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6월 말 열린 검찰수사심의위에서 “(이 부회장이) 기소된다면 엘리엇과의 ISD 소송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