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클라스 (사진=JTBC)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아 특별한 강연이 진행된다.

11일 방송되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신주백 소장이 ‘봉오동·청산리는 모두의 전쟁이었다’를 주제로 문답을 나눈다.

최근 '차이나는 클라스' 녹화에서 신주백 소장은 언제 올지 모를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독립군과 조선의 민초들이 한마음으로 만든 ‘승리전’인 봉오동·청산리 전투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했다.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이듬해에 열린 신년축하회에서 임시정부 노동국 총판인 안창호가 담화문을 공표했다. 그는 “우리가 오래 기다리던 독립전쟁의 시기는 올해인가 하오. 내년 이날은 우리 한성에서 신년축하회를 열고야 말 것이오!”라며 독립전쟁을 벌여 일 년 안에 조국을 되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렇게 산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군대를 규합하기 시작해 얻어낸 값진 승리가 바로 봉오동·청산리 전투. 과연 당시 독립군이 세계대전 이후 군사력 3위에 오른 일본을 꺾은 독립군의 승리 비결은 무엇일까. 제대로 군대를 조직할 수 없던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무장하고 싸웠을까.

우리가 흔히 홍범도와 김좌진 장군으로만 기억하는 봉오동·청산리 전투. 이 속에서 밝혀지지 않은 승리의 주역이 있다는 사실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독립군에게 기본적인 의식주 제공, 무기 구입비 지원, 없는 살림에 재봉틀을 구입하며 군복을 제작해 물심양면 도왔던 이들은 바로 독립군의 지원부대로 조선의 민초들이었다. 특히이들은 일본군에게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을 펼치고, 일본군 전화선을 절단해 통신망을 마비시키기까지. 훈련 한 번 받지 않았고, 총 대신 온몸으로 싸우며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우리가 몰랐던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숨은 주역, 민초들의 이야기는 11일(화) 밤 11시에 방송되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준현 한경닷컴 연예·이슈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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