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악취 민원에 청주시 진화 나섰지만 근본 대책 없어
환경단체 "정화 활동하면서 시와 주민이 함께 풀어갈 일"

청주 흥덕구 송절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임모(39)씨는 요즘 운전대 잡는 게 불안하다.

수시로 아파트 주변 도로에 내려오는 새끼 백로를 피하려다 사고 날 뻔한 경험이 있어서다.

임씨는 "경적을 울려도 아직 어려서 그런지 차 앞에서 꼼짝을 안 한다"며 "새끼가 달리는 차에 치어 다칠 수도 있고, 운전자들이 이를 피하려다가 사고 날 수도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백로가 무슨 죄"…청주 송절동 아파트촌 '불편한 동거'
이 아파트 주민과 백로떼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아파트 단지 인근의 8천㎡에 달하는 소나무숲은 오래전부터 백로 서식지였다.

충북도는 2001년 이곳을 '충북의 자연환경명소 100선'으로 지정했고, 청주시는 2010년 백로 서식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 이곳에 서식하는 백로는 1천여마리로 추정된다.

백로와 주민들의 갈등은 2016년 이 서식지로부터 70∼80m 떨어진 곳에 아파트촌이 형성되면서 시작됐다.

주민들은 새벽까지 들리는 백로들의 울음소리와 바닥에 널린 백로 사체와 배설물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큰 불편을 겪는다고 호소한다.

"백로가 무슨 죄"…청주 송절동 아파트촌 '불편한 동거'
최모(44)씨는 "2년 전 입주했을 때는 백로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개체 수가 늘어 소음과 악취가 배가됐다"며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울음소리와 백로가 배설한 분변 때문에 창문은 거의 닫고 산다"고 말했다.

31일 연합뉴스 취재진이 찾아간 백로 서식지는 300m 가량 떨어진 아파트 단지 입구인데도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KF94 규격의 황사용 마스크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악취와 소음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청주시는 13건의 민원이 접수되자 부랴부랴 이날 환경단체와 함께 백로 서식지에 대한 환경 정화 활동에 나서 급한 불을 껐다.

"백로가 무슨 죄"…청주 송절동 아파트촌 '불편한 동거'
그러나 환경단체는 백로와 주민들의 공존을 위해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과제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정기적으로 정화 활동을 벌여 주민불편을 해소하기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간벌을 할 수도 없다.

나무를 베어내 백로를 내쫓는다면 이들이 날아간 다른 지역에서 같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앞서 청주시는 2015년 서원구 수곡동 청주남중학교 잠두봉에서 소나무 120그루를 베어 백로 서식지를 없앤 적이 있다.

터전을 잃은 백로 떼는 잠두봉에서 1㎞가량 떨어진 서원구 모충동 서원대 여학생 기숙사로 자리를 옮겼다.

청주시는 또다시 이 숲을 간벌해 서식지를 없앴지만, 백로 떼는 송절동의 원래 서식지로 다시 모여들었다.

청주시 관계자는 "일단 서식지가 개인 사유지라 간벌에 나설 수도,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백로가 무슨 죄"…청주 송절동 아파트촌 '불편한 동거'
그러면서 "주기적으로 사체와 분변을 수거하려면 많은 인력이 동원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일단 추석 전까지 환경단체와 2차례의 정화 활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정화 활동이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주민 김모(30)씨는 "백로 서식지에 침투한 건 사람인데, 백로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서식지를 없애는 방법이 아닌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이라도 사체와 분변 수거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자연환경보전 청주시협의회 관계자는 "자주 정화 활동을 벌이면 악취는 덜할 것"이라며 "하지만 시 홀로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다.

주민들도 함께 힘을 합쳐 정화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