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시청 정문 앞에 설치된 안내 팻말 위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난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14일 서울시청 정문 앞에 설치된 안내 팻말 위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난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혐의와 관련한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박 시장을 고소한 측에서 “피해자가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고 밝히면서다. 서울시는 지난 4월 비서실 내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서도 초동 대처가 부실했던 사실이 확인되는 등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위력적인 조직문화로 인해 성비위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일한 대처로 일관한 서울시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초경찰서는 지난달 초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의 동료 여직원 성폭행 사건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4월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A씨는 회식을 마치고 만취한 동료 여직원 B씨를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경찰과 검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지난 5월 말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서 수사 중이다.

당시 서울시는 비서실 직원의 성폭행 사건이 경찰에 넘어갔는데도 인사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A씨를 비서실에서 다른 부서로 배치했을 뿐이다. 징계성 조치도 없었다. 열흘이 지난 뒤 언론 보도가 나오고서야 뒤늦게 A씨를 직위해제했다. 서울시 한 직원은 “비서실 내부에선 B씨를 두고 ‘왜 문제를 크게 키우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등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감싸고 도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서울시가 5월 발표한 ‘성희롱 성폭력 재발 방지 종합대책’에 따르면 지난 2년간 고충심의위원회에서 처리한 서울시(사업소 포함)의 성희롱 및 성폭력 사건은 13건에 이른다. 서울시는 2018년 3월 성희롱,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성평등도시 추진계획을 세우고 서울시 전 부서에 젠더담당관 367명을 지정하기도 했다.

서울시, 알고도 눈감았나

서울시는 아직까지 박 시장의 비서 성추행 혐의 논란과 관련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고소인 측이 서울시에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단 구성을 요구한 이후에도 “오늘은 고인을 보내드리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장례위원회의 문자를 보냈을 뿐 이날도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18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조직·인사를 총괄하는 행정1부시장을 지낸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소인 측 주장과 관련해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었다”고 언급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윤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박 시장은 누구보다도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분”이라며 “고소된 내용의 진위와 관계없이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주변에 미안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윤 의원을 향해 “권력을 가진 철면피”라고 비판했다.

박 시장의 전 비서가 고소장을 제출하기 앞서 서울시 내부에서 관련 내용을 파악해 박 시장에게 보고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정부 관계자는 “서울시가 고소 전 관련 내용을 파악하고 박 시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안다”며 “박 시장이 서울시 내부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박 시장 피소 사실과 성추행 의혹은 지난 9일 박 시장이 잠적한 뒤 언론의 보도를 보고서야 파악했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정지은/하수정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