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고발하는 범죄+로맨스 영화 '소년 시절의 너'
벼랑 끝에 내몰린 아이들이 선택한 '더 나은 날들'
개성 없고 위압적이기만 한 건물은 학교다.

중정에서 보이는 각 층 복도에 걸린 거대하고 시뻘건 플래카드들은 '후회 없이 학업에 정진하라'고 압박한다.

보는 이마저 가슴이 옥죄어 오는 듯한 학교 풍경 속 수많은 아이 중 누군가는 표정이 없고, 누군가는 지쳐있고, 누군가는 웃고 있지만, 그 안에서 악독하고 잔인한 괴롭힘이 시작된다.

영화 '소년 시절의 너'(영어 제목 Better Days)는 목적이 뚜렷한 영화다.

영화 시작 전, 학교 폭력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고, 피해자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는 자막이 먼저 나온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중국에서 괴롭힘 방지법이 제정된 과정을 설명해 준다.

이런 덧붙이는 말들이 영화의 군더더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학교 폭력을 영화 소재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로하고 외면했던 어른들은 반성하겠다는 절박한 의지로 읽혔다.

영화 제목과 화사한 메인 포스터만 보고 흔하고 뻔한 중화권 하이틴 로맨스로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영화는 보는 내내 아프고 힘들다.

(다만 영어 제목이 힌트를 주듯, 비극적인 결말은 아니니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
하지만 135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잠시라도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은 없다.

사회문제를 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긴장감이 흐르는 누아르와 슬프고 아름다운 청춘 로맨스로 담아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아이들이 선택한 '더 나은 날들'
소녀 가장이나 다름없는 첸니엔(저우동위 분)은 베이징대에 진학해 밑바닥 삶을 벗어나는 것이 목표다.

대입 시험 두 달 전, 같은 반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다 학교에서 투신하고, 다른 아이들이 그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을 때, 첸니엔은 다가가 겉옷으로 덮어준다.

그리고 가해 학생들의 새로운 목표가 된다.

성적이 벽에 나붙고 등수대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대입을 지상과제로 살아내는 아이들은 어느새 공감 능력과 측은지심을 잃어버렸고, 그들이 죄책감도 없이 저지르는 일들은 섬뜩하다.

따돌림과 괴롭힘은 당하는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이 되지만, 교사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도 '장난'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버티라고 말한다.

첸니엔은 홀로 괴롭힘을 견디면서도 길에서 집단 구타 현장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가 같이 폭행을 당한다.

그렇게 만난 베이(이양첸시 분)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맞고 아픈 게 익숙해져 버린 아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버렸고 세상은 상처투성이 아이들을 보듬지 않으니 두 아이는 어른을 믿지 않고, 서로에게 의지한다.

서로에게 처음 아프냐고 물어준 사람, 처음 소리 내 울게 해준 사람이 된다.

밝은 대낮에 당당하게 함께 걷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이들의 선택은 무모했고, 세상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일이 커지기 전, 왜 신고하지 않았냐고 묻는 형사에게 첸니엔은 '해봤다'고 답한다.

해봤는데 아무 소용 없지 않았느냐, 당신들이 해 준 게 없지 않았느냐는 날카로운 반문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아이들이 선택한 '더 나은 날들'
영화는 홍콩영화금상장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을 휩쓰는 등 수많은 상을 받았고, 중국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능가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영화의 성공과 화제는 탄탄한 만듦새뿐 아니라 중화권 최고의 청춘스타들 덕이기도 하다.

저우동위는 거장 장이머우 감독에게 발탁돼 '산사나무 아래'(2010)로 데뷔한 배우다.

2017년에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로 금마장상 주연상을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 그 투명하고 맑은 얼굴은 눈물과 땀, 상처와 피로 가득하다.

영화 막바지, 대사 한마디 없이 눈물 흘리며 미소짓는 그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땐 눌러왔던 감정을 터뜨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로 데뷔해 '소년 시절의 너'를 연출한 정궈샹 감독은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도 출연한 배우 출신이다.

7월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