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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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2일, 재판을 받던 '피고인'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회견을 하러 가봐야 한다'고 재판부에 말했습니다. 오전 10시 재판이 시작된 지 30여분 만이었습니다. 오전 11시경부터 국회에 일정이 있으니 이날 재판은 마무리하고 남은 서증조사(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려는 문건들에 대한 조사)는 다음에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이날은 최 대표가 '국회의원' 신분으로 처음 법정에 출석한 날이었습니다. 지난 4월 첫 재판 때 최 대표는 본인을 '휴업중인 변호사'라고 소개했습니다.

<실제 6월 2일 재판 내용>

▶피고인 최강욱 :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가 정당 기자회견이 있어서, 오늘 증거 정리된 부분은 다음에 해주시는 걸로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지금 증거기록 등은 이미 확인된 상황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재판부 : 글쎄요. 법원 기일은 쌍방(피고인과 검사)이 협의하에 하는 건데, 당초 5월 28일에 하기로 한 거 피고인이 안된다고 해서 오늘로 정한건데요.
▶피고인 최강욱 : 저희가 국회에서 하는 공식 일정이..
▶재판부 : 저희도 (사건이) 몇백건씩 있는데...이 사건 때문에 (오늘 오전일정) 다 비워놨는데...
▶피고인 최강욱 : 제가 당대표 위치에 있어서 공식행사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최 대표 변호인은 사전에 기일변경 신청서도 제출했다며 다시 한번 피고인의 '국회 일정'을 이해해달라는 취지로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실제 6월 2일 재판 내용>

▶변호인 : 허가해주신다면 피고인 없이 재판을 진행해도 될까요?
▶재판부 : 형사소송법상 위법합니다. 허용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변호인 : 저희가 기일변경 신청을 했는데 양해를 해주시면...
▶재판부 : 어떠한 피고인도 객관적으로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변경해주지 않습니다.

#2.

현직 법조인들은 2일 재판을 어떻게 봤을까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회 일정이나 기자회견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사정이지 객관적인 사유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개인 일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피고인은 재판에 출석할 의무가 있고 재판장이 돌아가라고 해야 돌아갈 수 있는 것이죠. 개인 일정이 (기일변경이나 불출석 허가 여부의) 사유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 드네요."

재경지법의 또 다른 현직 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끔 법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분들께서 급한 일이 생겼다며 재판 도중 집에 가야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긴 하세요. 하지만 최강욱 피고인이야 그런것 다 아는 사람 아닌가요? 관례를 벗어난 무례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사실 피고인이 없는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건 피고인에게도 불리한 거에요."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일변경 신청서를 냈는데 허가가 안 났다? 허가를 안 해줬으면 안 해준대로 재판장의 소송지휘권을 따라야죠. 민사 사건도 아니고 형사 사건에서 피고인 바쁘니까 빼고 진행하자는 건 판사를 무시하는 것밖에 더 되나요? 소송법을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순 없죠."

#3.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은 검찰에 의해 공소가 제기돼 재판에 넘겨진 당사자를 뜻합니다. 피고인은 법정에서 검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게 되는데 우리 법은 피고인이 재판에 직접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게끔 '피고인 출석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 277조는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사건을 규정하고 있지만 최 대표의 경우 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

피고인이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아니한 때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개정하지 못한다.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건에 관하여는 피고인의 출석을 요하지 아니한다. 이 경우 피고인은 대리인을 출석하게 할 수 있다.
1. 다액 5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사건
2. 공소기각 또는 면소의 재판을 할 것이 명백한 사건
3. 장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다액 500만원을 초과하는 벌금 또는 구류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피고인의 불출석허가신청이 있고 법원이 피고인의 불출석이 그의 권리를 보호함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하여 이를 허가한 사건. 다만, 제284조에 따른 절차를 진행하거나 판결을 선고하는 공판기일에는 출석하여야 한다.

또한 재판장의 허가 없이 피고인은 마음대로 법정을 나갈 수 없습니다.

①피고인은 재판장의 허가없이 퇴정하지 못한다. ②재판장은 피고인의 퇴정을 제지하거나 법정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재판장에게는 재판의 원활히 진행하고 소송의 질서를 유지하는 '소송 지휘권'이 있습니다.

공판기일의 소송지휘는 재판장이 한다.

#4.

현장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기자들은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최 대표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 달도 더 전에 잡힌 재판 날짜에 꼭 국회 일정을 잡았어야 했는지, 앞으로도 일정이 겹치는 일이 있다면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실건지 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실제 6월 2일 취재진과 문답 내용>

▶취재진 : 의원님, 오전 10시 재판인데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이 예정돼있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한 달전에 잡힌 (재판) 기일이었는데
▶최강욱 : 월요일은 최고 회의였고 화요일에 (당 기자회견을) 하는 게 제일 빠른 시기였고요. 재판 기일에 관해서 의견이 있어 제출해주면 변경해주겠다는 말을 재판장이 하셨고, 그것 때문에 개원한 후에 국민들에게 먼저 당의 입장을 먼저 말씀드리는 게 (제 재판보다) 더 빠른 순서,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취재진 : 앞으로도 재판 받으면서 의원직 수행하셔야 하는데 기자회견 등 일정이 이렇게 겹치고 이러면 안되지 않나요?
▶최강욱 : ...
▶취재진 : 재판 일정이 먼저 잡힌 후에 기자회견이 잡힌건가요?
▶최강욱 : ...
▶취재진 : 한 달 전부터 예정돼있던 재판기일이었는데 왜 같은날 기자회견을 잡으신건가요? 조율이 가능했을 것 같은데요?
▶최강욱 :...

입을 다물던 최 대표는 3분여만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의도를 가진 질문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저한테서 답을 끌어내서 재판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 누가 물어보라고 시킨 것 같은데 굉장히 부적절한 질문이고 굉장히 부적절한 해석입니다. 똑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시는 이유는 여러분이 저한테 설명하세요. 그게 이 사건하고 무슨 상관이 있고 당 대표가 당 대표 도리로서 하..(한숨) 국민에게 말씀드리는 자리를 갖는 것이 개원 이후에 갖는 게 당연함에도 그걸 재판과 연결지어서 굳이 말씀을 만드려고 하는 여러분 의도는 알겠지만 그런식으로 사실관계 왜곡하지 마세요."

취재진의 질문은 '국민에게 말씀드리는 자리를 갖는 것'이 왜 하필 이 날짜에 그것도 재판과 1시간 간격인 오전 11시로 잡혔냐는 것이었습니다. 취재진과 문답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최 대표와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실제 6월 2일 취재진과 문답 내용>

▶취재진 : 시간이 겹쳐서 아까 여쭤본건데요 의원님
▶최강욱 : 그러니까 그 의도있는 질문 누구세요. 어디서 온 누구세요?
▶취재진 : (소속, 이름 밝힌 후) 의도있는 게 아니라, 누가 또 지시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최강욱 : 그런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취재진 : 아까 저희가 누구 지시받고 질문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최강욱 : 지시받지 않았다는 취지로 이해하겠습니다. 분명히 얘기한 걸 왜 자꾸 물어보는거죠?

이 외에도 현재 본인의 재판이 진행 중인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지원한 것에 대해 이해 충돌의 소지가 있진 않은지 등을 물어봤지만 최 대표는 "뭔가 멘트를 따서 이상한 해석을 덧붙이시려고 하는 거 같은데, 있는 그대로 보시면 됩니다"는 말을 남기고 법정을 떠났습니다.

#5.

국회의원도, 전 대법원장도, 한 기업의 총수도, 전직 대통령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이상 모두 같은 '피고인'으로 불립니다. 재판장은 그 어떠한 피고인이라도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기일 변경을 허용하지 않고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은 채 재판이 진행되는 것은 형사소송법에 위반되는 것이며 이는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최강욱 피고인의 다음 재판 날짜는 7월 23일 오후 3시로 예정돼있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