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상황이 안좋아서…" 참여재판 놓고 고민하는 법원(종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우려 속에 국민참여재판을 둘러싼 법원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창형 부장판사)는 대학원생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대 교수 A씨 공판 준비기일을 열었다.

A씨 측은 혐의를 부인하며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죄를 가리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재판부는 난색을 표했다.

주춤하던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거세지는 상황에서 법정에 많은 인원을 불러모으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물론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더 걱정스러운 건 국민참여재판을 하려면 법정에 수십명의 배심원 후보를 불러 추첨을 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 다시 (코로나19) 상황이 안 좋아져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같은 날 형사합의22부(양철한 부장판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가수 고(故) 김광석 씨 부인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고발뉴스 기자 이상호 씨 사건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 개시 여부를 판단하는데 코로나19를 고려해야 할 요소로 꼽았다.

"코로나 상황이 안좋아서…" 참여재판 놓고 고민하는 법원(종합)
법조계는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 개시 결정에 코로나19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해당 사건의 쟁점 다툼이 치열할 경우 재판을 하루 만에 끝내기 어렵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수차례 법정에 부르게 될 경우 자칫 감염의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지난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휴정기를 가졌고 이례적으로 원격영상재판도 일부 진행하는 등 코로나19에 예민하게 대응해왔다.

이달 15일에는 서울구치소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서울법원종합청사 본관의 모든 법정을 폐쇄하기도 했다.

국민참여재판법은 누구든 원할 경우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면서도, 재판부의 배제결정 사유에 '그 밖에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둬 법원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의 이유로 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국민참여재판 개시 결정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은 법원 내부에서도 미세하게 엇갈린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코로나를 꼭 배제조항의 '그 밖의 적절하지 않은 이유'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보통 배제 결정은 외부적 환경이 아니라 사건의 성격을 위주로 고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판사는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이 찾아온 만큼, 향후에는 이 같은 전염병도 배제 결정 사유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의 고민은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해당 재판부는 건조물침입 혐의로 기소된 B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달 중순 국민참여재판을 열기로 했다가 코로나19 확산세가 재차 강해지자 기일을 7월로 연기했다.

한편 코로나19를 이유로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하는 것이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나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코로나19를 너무 편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