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해자 폭행과 피해자 사망 사이 인과관계 불분명"
조각난 뇌·심장 태평양 건너와 재부검…재판부 "인위적 변형으로 2차부검 한계"

멕시코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한인 태권도 사범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 2명이 한국 법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형과 벌금형에 각각 처해졌다.

이번 사건은 우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멕시코 수사당국의 부검 결과에 문제를 제기, 이례적으로 피해자의 시신과 여러 조각으로 절단된 뇌·심장 등 장기를 넘겨받아 재부검에 나서면서 이목이 쏠렸다.

국과수 재부검 멕시코 한인 태권도사범 치사사건 "폭행만 인정"

법원은 그러나 1차 부검 후 시신과 장기에 인위적 변형이 가해진 점 등 2차 부검이 지니는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가해자의 폭행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건은 지난해 1월 2일 오후 10시 30분께 멕시코 누에보 레온주의 주점에서 발생했다.

당시 만취 상태이던 한인 태권도 사범 A(34)씨는 서비스 문제를 놓고 주점 업주·직원들과 다투기 시작했다.

A씨와 함께 술자리를 갖던 지인 김모(40) 씨와 이모(40) 씨는 A씨를 만류하고 나섰으나, 여의치 않자 손으로 뺨을 때리고 밀치는 등 A씨를 폭행했다.

폭행당한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고, 자정이 된 3일 0시께 끝내 숨졌다.

멕시코 수사당국은 A씨의 부검 결과 별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사인을 '비외상성 지주막하출혈(뇌출혈)'로 결론 내렸다.

쉽게 말해 A씨가 폭행 등 외력에 의해 일어난 뇌출혈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자연사했다는 것이었다.

유족은 크게 반발했다.

A씨 아내는 지난해 1월 22일 현지 수사와 부검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면서 "멕시코에서 억울하게 죽은 저의 남편을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국민 청원을 올려 2만 2천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한국 경찰은 급히 수사에 나섰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주재원으로 수년 전부터 멕시코에 체류 중이던 김씨와 영주권을 따고 20년 가까이 멕시코에 거주하던 이씨 모두 경찰의 수사 요청에 동의, 국내로 입국해 조사를 받았다.

이와 동시에 국과수는 멕시코 법의학연구소의 부검에 문제를 제기하고, A씨의 시신과 여러 조각으로 절단된 상태의 뇌·심장 등 장기를 넘겨받아 지난해 1월 21일과 2월 1일 2차 부검을 진행했다.

그 결과 멕시코 수사당국의 결론과는 달리 사인을 '외상성 뇌출혈'로 보고 검찰에 부검 감정서를 전달했다.

검찰은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김씨에게 폭행치사 혐의를, 이씨에게 폭행 혐의를 각각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그러나 가해자의 폭행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를 들어 폭행 혐의만 유죄로 판단했다.

수원지법 형사11부(김미경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이 사건 선고 공판에서 김씨에게 폭행 혐의만을 인정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이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고 법원측이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에 대한 1차 부검은 멕시코에서, 2차 부검은 한국에서 이뤄졌다"며 "1차 부검으로 인해 시신에 인위적 변형이 가해진 후 2차 부검이 이뤄진 사정을 더 해 보면 국과수의 부검 감정서는 2차 부검의 결과물이라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A씨의 사인을 외상성 뇌출혈이라고 보더라도, 김씨의 폭행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외상성 뇌출혈은 외력을 받는 즉시 대량 출혈이 일어나 곧바로 허탈 상태에 빠져 급격히 사망한다"며 "CCTV 영상 등을 볼 때 피해자는 폭행 피해 이후에도 실랑이를 하는 등 움직임에 이상이 없었는데, 이를 종합하면 피고인의 폭행이 외상성 뇌출혈의 원인이 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1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최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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