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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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가 보행자를 치는 사고를 낸 뒤 그냥 지나갔다 하더라도, 사고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뺑소니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도주치상으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지난달 17일 공소기각 판결했다.

A씨는 지난해 1월 4일 밤 11시54분께 부산시 해운대구의 주택가 이면도로에서 50대 여성 B씨를 치고 그대로 달아난 혐의를 받았다. B씨는 쇄골 부위가 골절되는 등 전치 6주 부상을 입었다. 뒤늦게 B씨의 부상 사실을 알게된 A씨는 B씨와 합의를 했지만, 당시 사고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뺑소니 혐의는 부인했다. 뺑소니는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닌 만큼 검찰은 그를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고 당시 A씨가 차량 전조등을 켜지 않았으며, B씨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했다. 게다가 A씨는 당시 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운전자가 교통사고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차량을 잠시 멈추거나 속도를 줄이는 게 일반적인데, A씨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었다”며 “A씨가 사고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A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결과에서도 ‘사고를 몰랐다’는 물음에 진실 반응이 나왔다.

재판부는 또 “사고 당시 A씨가 음주나 무면허 상태에 있었다고 볼 정황도 없고,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어 사고에 대한 보험처리도 가능한 상황이었다”며 “A씨가 도주할 이유를 상정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A씨를 대리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측은 “기계적인 뺑소니범 수사 관행에 법원이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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