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의 날(11일)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천병희 씨(오른쪽 세 번째) 가족 모습.  /천병희 씨 제공
입양의 날(11일)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천병희 씨(오른쪽 세 번째) 가족 모습. /천병희 씨 제공
가족만큼 각별한 사이가 있을까. 새로운 사람과 가족의 인연을 맺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큰일로 여겨진다.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흔하지 않지만 입양도 하나의 방법이다. 천병희 씨(61·사진)는 자녀 5명을 모두 입양을 통해 가족으로 맞이했다. 어느덧 첫째와 둘째는 성인이 됐다. 5남매의 어머니이자 입양 부모 상담사로 활동하는 천씨는 입양의 날인 지난 11일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천씨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이들과) 한 가정으로 지낸 지난날들이 너무나 뿌듯하다”고 말했다.

천씨는 첫째를 처음 봤던 1999년 12월 13일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추위가 몰아치던 이날, 산부인과에서 일하던 천씨 남편이 동네 파출소에서 한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왔다. 탯줄을 보니 생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은 아이였다. 남편은 병원에서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천씨에게 수차례 입양 의사를 물었다. 서른아홉이란 늦은 나이에 결혼한 천씨가 3년째 아이를 갖지 못한 차였다. 고심 끝에 입양을 결정한 천씨와 남편은 입양 절차를 거쳐 이듬해 4월 14일 첫째를 입양했다.

당시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일하던 천씨는 첫째를 입양하고 1년 휴직한 뒤 사표를 냈다. 퇴직하지 말라는 주위의 만류도 컸다. 하지만 그는 “소중하게 들여온 내 아이를 내 손으로 최대한 잘 보살피고 싶었다”고 퇴직 당시를 회고했다. 그리고 그는 네 명의 아이를 더 입양했다. 막내는 올해 중학교 3학년이다. 천씨는 “공무원 생활을 계속했으면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로웠겠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천씨는 아직도 딸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내가 너희를 돈으로 살 수 있었겠니. 단 한 번도 입양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어”라고.

천씨는 어릴 적에 소아마비를 앓았다. 여전히 다리 거동이 불편하다. 하지만 천씨는 “나의 신체적 장애가 아이를 입양하고 키우는 데에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아주고 업어주는 데에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내가 가능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8남매의 막내인데, 언니 오빠들과 지역 주민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데에 큰 도움을 줬다”며 “내가 다 키운 거라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천씨는 입양 사실을 자녀들에게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입양 홍보기관에서 자녀들과 함께 활동했다. 자녀들은 다른 입양아를 돌봐주고, 천씨는 입양 ‘선배’로서 다른 입양 부모를 상담해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까지 한국입양홍보회 안성·평택지역 대표로 활동한 그는 올해엔 입양가족상담교육협회에서 사춘기 자녀를 둔 입양가정 부모를 상담하고 있다. 천씨와 같이 봉사를 다닌 자녀들은 요즘도 천씨에게 말한다고 한다. “동생 한 명 더 입양하자”고.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