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김상훈의 이렇게 이혼·상속] (6) 유증을 포기한 것이 사해행위가 될까?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

<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8다260855 판결>

◆ 사실관계

① X는 2006년 4월 1일 A에게 2억 원을 빌려주면서 변제기(채무 이행 시기)는 2006년 7월 31일로 정했다. 그리고 2006년 4월 말부터 매월 말일에 480만 원씩 이자를 지급받기로 약정했다.

② 앞서 A의 아버지인 망인 J(‘망인’)는 1998년 5월 7일 자신의 소유인 이 사건 부동산을 A에게 유증(‘이 사건 유증’)하고 유언집행자로 K를 지정한다는 내용의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했다. 유증이란 유언을 통해 재산을 무상으로 타인(자식)에게 주는 행위다.

③ 망인이 2015년 4월 4일경 사망하자 A의 또다른 채권자인 Y는 2015년 9월 4일 A에 대한 대여금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을 대위원인(채권자가 자기의 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채무자에 속하는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의 원인)으로 삼아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해 망인으로부터 상속인들인 A, B, C, D 명의로 각 4분의1 공유지분씩 상속을 원인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이 사건 지분이전등기를 마쳤다.

④ A는 망인의 사망 이후인 2015년 추석에 망인의 상속인들에게 이 사건 유증을 받지 않고 상속 지분대로 상속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⑤ X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면서 이 사건 유증 포기행위의 취소 및 그 원상회복으로서 이 사건 지분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A는 X에게 차용금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음에도, 채무초과 상태에서 2015년 9월 27일경 망인의 상속인들에게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해 망인이 한 유증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위 유증 포기행위는 X를 포함한 일반 채권자들에 대한 공동담보를 감소시키는 사해행위에 해당한다.”

◆ 대상판결의 요지

유증을 받을 자는 유언자의 사망 후에 언제든지 유증을 승인 또는 포기할 수 있고 그 효력은 유언자가 사망한 때에 소급하여 발생하므로(민법 제1074조), 채무초과 상태에 있는 채무자라도 자유롭게 유증을 받을 것을 포기할 수 있다. 또한 채무자의 유증 포기가 직접적으로 채무자의 일반재산을 감소시켜 채무자의 재산을 유증 이전의 상태보다 악화시킨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유증을 받을 자가 이를 포기하는 것은 사해행위 취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 해설

1. 유증의 승인과 포기

유증을 받은 사람은 유언자의 사망 후에 언제든지 유증을 승인 또는 포기할 수 있다(제1074조 제1항). 유언은 상대방이 없는 단독행위이기 때문에 유증을 받을 사람의 승낙이 필요 없음은 물론이고 수유자(유증을 받을 사람)에 대한 의사표시도 요하지 않지만, 수유자의 의사에 반해서까지 권리취득을 강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괄유증을 받은 사람은 상속인과 동일한 권리의무가 있으므로(제1078조) 포괄유증의 승인 또는 포기에 관하여는 상속의 승인과 포기(제1019조 이하)가 준용되고, 유증의 승인 또는 포기에 관한 제1074조 이하는 특정유증의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 따라서 특정유증을 받은 사람은 언제라도 포기할 수 있지만 포괄유증을 받은 사람은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포기를 해야 한다(제1019조 제1항).

참고로 특정유증은 재산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유증의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포괄유증은 적극재산은 물론 소극재산, 즉 채무까지도 포괄하는 상속재산의 전부 또는 비율에 의한 유증을 의미한다.

유증의 승인이나 포기는 상속의 승인이나 포기와 달리 기간이나 방식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유증의 승인이나 포기는 통상 유증의무자에 대한 의사표시로 한다. 유증의무자는 유언집행자이지만 상속인에 대한 의사표시도 유효하다고 본다. 이 사건의 경우 망인은 이 사건 부동산을 특정해서 A에게 유증하였으므로 이것은 특정유증이다. 그리고 수유자인 A는 상속인들인 B, C, D를 상대로 유증 포기의 의사표시를 하였으므로 이 점에 관해서는 문제가 없다.

2. 유증의 승인과 포기의 효과

유증의 승인이나 포기는 유언자가 사망한 때에 소급하여 그 효력이 있다(제1074조 제2항). 따라서 수증자가 특정유증을 승인한 경우에 그는 유언자 사망시부터 유증목적물에 대한 이행청구권을 취득한 것으로 본다. 만약 특정유증을 포기하였다면 유증목적물은 상속개시 당시부터 상속인에게 귀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속개시 시부터 특정유증 포기 시까지 사이에 발생한 상속재산에 대한 과실(수익)은 상속인에게 귀속된다.

특정유증을 포기한 경우에 그것이 유증을 포기한 자의 채권자에 대해서 사해행위가 되는지가 문제된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도 바로 이것이다. 대상판결은 유증을 포기한 것이 사해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유증의 포기는 소급효를 가지므로 채무초과 상태에 있는 채무자라도 자유롭게 유증을 포기할 수 있으며, 채무자의 유증 포기가 직접적으로 채무자의 일반재산을 감소시켜 채무자의 재산을 유증 이전의 상태보다 악화시킨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유증의 포기와 포괄유증의 포기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포괄유증을 받은 사람은 상속인과 동일한 권리의무가 있어서 상속의 포기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상속포기는 상속인으로서의 지위 자체를 소멸하게 하는 행위로서 순전한 재산법적 행위와 같이 볼 것이 아니라 1차적으로 피상속인 또는 후순위상속인을 포함하여 다른 상속인과의 인격적 관계를 전체적으로 판단하여 행해지는 ‘인적 결단’으로서의 성질을 가진다.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비록 상속인인 채무자가 무자력 상태에 있다고 해서 그로 하여금 상속포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사해행위취소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상속포기는 민법 제406조 제1항에서 규정한 “재산권에 관한 법률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사해행위취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다29307 판결).

그러나 특정유증을 포기하는 것은 포괄유증이나 상속을 포기하는 것과 달리 ‘인적 결단’으로서의 성질을 가지지 않는다. 특정유증의 포기는 순전한 재산법적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특정유증을 포기하는 행위는 채권자대위권이나 채권자취소권의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법학박사)
- 고려대 법과대학 졸업
- 고려대 법학석사(민법-친족상속법) 전공
- 고려대 법학박사(민법-친족상속법)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