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한 뒤 첫날인 24일 대구국제공항. 이날 국제선 운항은 오전 7시50분 베트남 다낭으로 출발한 비엣젯항공과 낮 12시 중국 상하이로 가는 동방항공 두 편뿐이었다. 국내선도 티웨이항공의 제주노선 다섯 편만 운항됐다. 이마저도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지난 23일부터 운항을 중단했다. 한때 하루 100여 편의 항공기가 뜨던 대구공항은 코로나19 여파로 폐쇄 위기에 처했다. 김수복 대구시 민항활성화팀장은 “불과 3~4일 만에 대구공항이 고립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 마스크 대란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대구·경북지역의 주요 대형마트에 마스크를 사려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24일 이마트 경산점 앞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 마스크 대란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대구·경북지역의 주요 대형마트에 마스크를 사려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24일 이마트 경산점 앞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대구 시내 출퇴근 시간 빼고 텅 비어

최근 1주일 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에서만 442명(24일 오전 9시 기준)으로 급증하면서 대구가 고립되고 있다. 대구를 지나는 교통편이 줄고, 상당수 기업은 대구·경북 지역 출장 자제령을 내렸다. SK그룹은 대구·경북에 출장을 가거나 방문한 임직원에게 14일 동안 재택근무를 명했다. 효성그룹도 대구·경북 지역 출장을 금지했다.

지난 주말 동대구역에서는 승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에 있는 대구 신세계백화점 주차장은 주말 휴일엔 하루 평균 9000대의 주차 차량으로 북적였다. 지난 주말에는 2000대까지 줄었다. 매일 오전 수십 대씩 길게 늘어서 있던 동대구역 앞 택시들도 24일 오전에는 3~4대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구 시가지도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다. 지난 21일부터 권영진 대구시장은 시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권고했다. 이런 여파로 대구도시철도 승객도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지난 12일 하루 40만 명에서 22일에는 9만7000명, 23일엔 5만8000명까지 줄었다.

시민들의 이동이 줄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자영업자다. 대구 중구의 한 식당 주인은 “손님이 없어 이달 매출이 지난달에 비해 90%는 줄어들 것”이라며 “코로나19도 무섭지만 장사안돼 가게문 닫을까 더 걱정”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자영업자들은 “정부가 위기대응단계를 높인 만큼 소상공인과 자영업에 대한 특별지원대책도 서둘러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대구역에서 가까운 데다 주위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이 있어 평소 유동인구가 많은 칠성시장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날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시장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자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인근 목욕탕 등도 대부분 휴업에 들어갔다. 대구의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은 25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엿새간 전체 점포가 휴점하기로 했다. 서문시장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23일 임시 휴점한 바 있으나 전체 휴점은 서문시장이 조선 중기 개설된 이래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기사들 대구 진입 꺼려

일부 택배기사가 대구 진입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배송도 차질을 빚고 있다. 한 시민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마스크를 주문했지만 1주일째 배달이 안 되고 있어 갑갑하다”고 말했다.

경기에서 일하는 한 배송기사는 “대구로 배달해달라는 요청이 20만원에 들어왔지만 대부분 기사들이 콜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은 생필품 구매로 몰리고 있다. 이날 대구 시내 일부 이마트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통해 전달받은 마스크를 판매하자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대구 북구 칠성동 이마트에서 이날 시중에서 3000원에도 구하기 어려운 마스크를 장당 820원에 1인당 30개씩 공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개장 전인 오전 8시부터 소비자들이 매장 밖 1㎞이상까지 장사진을 이뤘다. 북구에 사는 허모씨(48)는 “좀 늦게 나왔더니 줄이 너무 길어 줄서기를 포기했다”며 “괜히 마스크를 사려다가 감염증에 걸리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대구에서는 정부가 지난 23일 코로나 대응단계를 심각단계로 올리면서 2주간 자율적으로 이동 자제, 외출 자제를 또 요청한 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제대로 된 방역 조치를 취하지 않고 뒤늦게 뒷북 대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 이모씨는 “중국인 입국은 제한하지 않으면서 대구를 먼저 봉쇄하는 일관성 없는 정부 조치에 분노가 치민다”며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진 대구시장도 24일 열린 기자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다른 나라처럼 중국인 입국 차단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미국 CBS 기자의 질문을 받자 “중국인 입국 금지는 때늦은 감이 있다. 외교적인 부분을 감수하고 중국인 입국을 금지한 나라는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더디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