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구하라의 빈소가 25일 서울 반포동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가수 구하라의 빈소가 25일 서울 반포동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17, 15, 18.'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카라의 구하라, f(x)의 설리, 샤이니 종현의 데뷔 당시 나이다. 일반인이라면 학교를 다니며 사회화 과정을 거칠 시기다. 하지만 이들은 이 시기에 연예 기획사에 들어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긴 시간 훈련을 받는 등 일찍이 경쟁 사회에 내몰렸다. 이후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악플에 시달리며 우울증 등의 증세를 호소하기도 했다.
고 구하라와 설리가 함께 있는 사진/사진=구하라 인스타그램 캡처
고 구하라와 설리가 함께 있는 사진/사진=구하라 인스타그램 캡처
어린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 스타들이 잇달아 세상을 등지면서 엔터 업계의 아이돌 양성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엔터 기획사들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꾸려 한층 경쟁력 있는 아티스트를 내놓기 위해 연습생들에게 더 많은 연습을 요구했다. 덕분에 대부분의 아이돌은 노래와 퍼포먼스 모두에 능하게 됐고 현재는 전 세계에 케이팝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기획사는 연습생에게 레슨과 함께 '숙식'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숙식'의 부작용은 만만치 않았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합숙은 굉장히 위험한 제도다.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라면서 "결과적으로 정체성이 깨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방송된 MBC 'PD수첩'은 합숙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요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Mnet '아이돌 학교'에 출연한 한 연습생은 PD수첩 측에 "합숙을 한다고 해 스트레스 받아 창문을 깨고 탈출한 적이 있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합숙 당시 받았던 극심한 스트레스를 토로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관행상 계약 없이 기획사에 소속돼 교육을 받는 연습생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 8일 대중문화예술 분야 연습생 표준계약서를 배포했다.

표준계약서에는 △연습생 계약 기간 3년 초과 금지 △연습생 교육 활동 무상 제공 (수익 배분 시에도 공제 불가) △교육 활동 직접비 회계 내역 연 2회 연습생에게 통보 △수익 발생 시 수령 후 45일 이내에 정산금 및 정산 내역 지급 △기획업자, 임원, 소속 직원의 성범죄 확정 판결 시 연습생 계약 해지 가능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 계약서는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으로 법적인 구속력이 없을뿐더러 연습 시간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

김 평론가는 "'몇 세 이하의 연습생은 하루 몇 시간까지만 연습한다', '학교 수업을 이수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등의 내용이 제도적으로 마련해 일반인들처럼 정신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엔터 업계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육성한다면 장기적으로 공멸할 것"이라면서 "현재의 연습생이 모두 다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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