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 중식당에서 MBA 졸업생들과 좌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김지현 EY한영 시니어 컨설턴트, 한은정 듀폰코리아 부장, 최유희 디코드 대표, 최은필 카카오 대외정책팀 부장.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지난달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 중식당에서 MBA 졸업생들과 좌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김지현 EY한영 시니어 컨설턴트, 한은정 듀폰코리아 부장, 최유희 디코드 대표, 최은필 카카오 대외정책팀 부장.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직장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든 이들의 고민은 대체로 한 곳으로 모아진다. 전문성의 부재. 회사에서 업무로는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지만 나만의 전문성이라고 내세울 만한 분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막연한 불안에 휩싸인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평생학습 프로그램과 직장인 재교육 과정 등을 둘러보지만 지식에 대한 갈증을 채우긴 역부족이다.

이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떠올린다. 하지만 진학을 결정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을까’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을 텐데’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수많은 고민이 머릿속을 맴돈다. 한국경제신문이 MBA 진학을 고민하는 직장인을 대신해 4인의 ‘MBA 선배’를 만나 그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었다.

▶MBA에 진학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최유희 디코드 대표=패션 디자이너로 일한 지 15년이 넘어가던 때였습니다.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제게 변화를 주고 싶어 막연히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전공과 관련된 디자인 분야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마음 깊숙이 품고 있던 창업에 대한 꿈이 다시 떠올라 한양대 MBA 경영·전략과정에 진학했습니다.

△한은정 듀폰코리아 부장=듀폰코리아는 제 첫 직장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회사를 23년째 다니던 해 알토대 EMBA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영업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전략기획 업무를 맡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기다린다고 기회가 알아서 찾아오진 않았죠. 제가 먼저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해 MBA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김지현 EY한영 시니어 컨설턴트=저는 목적의식이 확실했습니다. 데이터 분석 방면으로 전문성을 쌓고 싶었습니다. 데이터가 쏟아지는 정보화 시대엔 앞으로 어떤 업무를 맡더라도 데이터를 분석하는 역량이 필수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대학의 MBA 과정을 꼼꼼하게 살펴본 결과 가장 적합한 과정이 KAIST 정보미디어 MBA의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과정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최은필 카카오 대외정책팀 부장=학부 때 공대에서 전자전기컴퓨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회사에서는 기획 관련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11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늘 경영·전략 분야 지식에 대한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혼자 책을 보고 공부하는 것에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도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성균관대 야간 프로페셔널 MBA 과정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MBA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최유희 대표=사실 대학에서도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오래 일하다 보니 회계나 재무 분야는 그야말로 젬병이었습니다. MBA를 통해 깊은 지식은 아니지만 경영학 전반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대표로서 회사를 운영할 때 적어도 재무제표를 보고 문제점을 찾을 수 있는 정도까지는 올라왔다고 생각합니다. 감성적이었던 디자이너에서 이성적인 경영 전략적 사고를 갖춘 경영자로 거듭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한은정 부장=가장 큰 장점은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 생활을 오래하면서 나름 각계 전문가들을 만나며 인맥을 두텁게 쌓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MBA에 진학하고 나서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MBA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세상을 보는 시야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회사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도 동문들이 큰 힘이 됐습니다.

△김지현 시니어 컨설턴트=저는 사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도 MBA 과정 덕에 구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같은 MBA 과정에서 공부하던 동기가 먼저 입사한 뒤 회사에 저를 추천해줬어요. 학교의 취업 지원 시스템도 굉장히 잘 돼 있습니다. 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단계별로 준비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학교 차원에서 계속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국내 대학 MBA 출신이라는 한계는 없었나요.

△김지현 시니어 컨설턴트=MBA 진학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해외로 떠날지, 국내 대학에서 공부할지부터 고민합니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국내 MBA 과정도 해외 대학과의 교류를 통해 복수학위를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엔 국내와 해외 MBA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국내 MBA 교수진도 대부분 해외에서 공부하고 왔거나, 외국인 교수님이고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고려한다면 국내 MBA가 해외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은정 부장=국내와 해외 MBA를 선택할 땐 본인의 목표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젊은 나이에 글로벌 회사의 수뇌부로 일하고 싶은 목표가 명확하다면 대학 졸업 후 바로 해외 대학에서 MBA 과정을 시작하는 것도 아직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있는 부모로서 훌쩍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저처럼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가정이 있는 사람에겐 국내 대학 MBA가 적합하다고 봅니다.

△최유희 대표=저는 국내에서 사업하는 사람이다 보니 해외 MBA보다 국내 MBA가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데 훨씬 더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각자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상황에 맞는 MBA는 국내 MBA였습니다.

△최은필 부장=처음 MBA 과정 진학을 고민할 땐 해외 MBA 과정을 주로 알아봤었죠.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2년간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경력에 공백이 생기기도 하고 비용 문제도 있었죠. 반면 국내 대학 MBA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충분히 과정을 마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해외 MBA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어느 정도 거품이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한국도 충분히 글로벌화해 굳이 해외 MBA에 진학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